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따뜻하고 포근한 작품
딜쿠샤는 국가등록문화재 제687호로 지정,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하고 있다. 대한독립선언서를 입수해 3·1 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미국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가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2021년엔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뮤지컬 <딜쿠샤>는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가상의 인물 ‘금자’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실타래를 풀어나간다.
마침 관람한 날에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다. 연출진과 배우들에게 직접 듣는 이야기는 작품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었다. 뮤지컬 <딜쿠샤>는 마음을 녹이지만 뜨겁지 않은,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작품이다.
시작과 함께 발견한 특이점 하나. <딜쿠샤>의 무대는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에 함께 있는 듯한 구조였다. 각 세션이 라이브로 연주되는 진행 방식이었다. 건반을 비롯해 각종 타악기와 현악기를 곡마다 바꾸어 가며 연주했다. 관객은 실시간으로 연주되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연주자와 배우가 합을 맞추는 것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창은 ‘일고수 일명창’이라며 누가 앞서는 것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무대를 꾸민다고 한다. 이종석 연출가는 그것을 이야기하며 해당 진행 방식에 관해 설명했다. 연주자 또한 해당 극을 꾸미는 사람들로서 동일하게 주목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주자들 역시 마치 집(딜쿠샤)에 살아가는 세대원처럼 배우들과 소통하며 함께 에너지를 만들어 가는 것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의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연주자와 연주자, 배우와 배우뿐만 아니라 연주자들과 배우들이 맞추는 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더욱 큰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뮤지컬 <딜쿠샤>는 배우의 등퇴장이 빈번하지 않다. 의상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배우들은 퇴장하지 않고 무대 위에 남는다. 1·2층의 가장자리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마치 관객처럼 넘버를 함께 즐기기도 한다. 함께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른다. 한 명의 배우가 여러 배역을 맡는 상황에서 해당 장치가 혼란함을 가중하지는 않을까 했지만, 오히려 친절한 안내서가 되었다. 지정된 자리에 따라 인물을 익히기 좋은 구조였으며 박수가 유도되어 넘버를 한껏 즐길 기회가 되기도 했다. 긴 세월을 담은 작품은 특정한 배경을 하나하나 세밀히 보여주기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딜쿠샤>는 이렇듯 인물 중심의 방식으로 진행하며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더욱 자극하면서 해당 부분을 하나의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뮤지컬 <딜쿠샤>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부터 태평양 전쟁, 광복 이후 한국전쟁, 개발 광풍 시대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담았다. 하지만 전혀 장황하지 않다. 역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당시의 독립운동이 어떠하며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졌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그들의 삶과 존재를 그려낸다. ‘별것 없다, 딜쿠샤에 가장 큰 일은 화재다’라고 말한 양준모 예술감독의 말과 같다. 스토리가 방대하다거나 오케스트라가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소소한 듯하면서도 무엇보다 익숙한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가진 집이라고는 파란 하늘뿐이던 식민지의 소녀’에게도, 피난 온 이들에게도 따뜻한 집이 되어주던 ‘딜쿠샤’. 뮤지컬 <딜쿠샤>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궁전이 된 딜쿠샤를 머물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식민지에 살던 소녀, 금발의 미국 소년의 머리 위에 햇살이 똑같이 내려앉는다던 말처럼 딜쿠샤는 누구에게나 따스한 집이 되어주었고, 그것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졌다.
작품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뮤지컬 <딜쿠샤>는 ‘집’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단지 물질적 자산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든 사건, 추억, 의미가 생기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생각해보게 한다. 나에게 집이란 마치 딜쿠샤처럼 그 모습이 변한다고 해도 자리를 지켜줄 공간이다. 언제 돌아와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그런 공간. 뮤지컬 <딜쿠샤>는 그런 집을 닮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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