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 생활공작소 대표… “아내가 손님 올 때 분홍장갑 숨기는 것 보고"
고무장갑은 왜 분홍색일까. 제습제 뚜껑도 왜 전부 분홍색일까.
천편일률적인 생활용품 디자인의 틀을 깬 회사가 있다. 첫 제품이었던 검은 뚜껑의 제습제가 성공하면서 고무장갑, 핸드워시, 주방·세탁세제, 물티슈, 강아지 배변패드 등 150여개의 제품으로 영역을 넓혔다. 제품들엔 오로지 흰 바탕에 검은 글씨로 ‘생활공작소’가 적혀있다.
간결한 디자인으로 승부에 나선 생활공작소의 제품들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소비자들의 집안 곳곳을 차지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위생용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8~2021년 매출은 매년 배 가까이 늘었고, 지난해에는 12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친환경 제품 출시와 캠페인을 통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는 생활공작소 김지선(44) 대표를 최근 서울 영등포구 본사에서 를 만났다.
-어떻게 생활공작소를 만들었나.
“생활공작소를 창업하기 전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면서 생활용품 시장을 들여다 봤다. 업체가 매우 많지만 제품 가격에 거품이 있다고 생각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차별화된 기획이 뒷받침된 상품을 내놓는다면 새롭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합리적 소비를 위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첫 출시제품인 제습제가 대박이 났다. 브랜드 론칭 후 6년차까지는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핑크색 일색이었던 제습제 뚜껑을 검은색으로 출시했던 게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탔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2040 소비자들이 저희 제품을 SNS에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럴(마케팅)이 됐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해한 성분을 빼려는 노력도 소비자들이 알아줬다.”
-회색 고무장갑도 주목받았다.
“아내가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마다 고무장갑을 숨겼다. 분홍색 고무장갑이 공들여 꾸민 주방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다. 손님이 와도 걸어놓을 수 있는 고무장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색깔을 다르게 하면서도 튼튼한 고무장갑을 만들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제안을 받아주는 공장이 없었다. 동남아시아·중국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판 끝에 생활공작소만의 고무장갑을 만들 수 있었다.”
-비슷한 디자인의 생활용품이 많이 나왔는데.
“껍데기를 따라할 수는 있지만 본질까지 따라올 수는 없다. 휘황찬란한 디자인이 주류였던 생활용품 시장에 저희가 들어오면서 트렌드가 바뀌었다. 저희 디자인을 따라 하는 브랜드들이 많아지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지난해 처음으로 브랜드 리뉴얼을 했다. 그 결과 올해 ‘독일 디자인 어워드’, ‘IF 디자인 어워드’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상들을 받았다. 디자인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았고, 저희가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해외 시장 반응은.
“생활공작소는 현재 동남아,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약 10여개국 온·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해 있다. 2021년 9월 몽골 울란바토르 내 이마트 3개 지점에 입점했고 지난해 2월에는 미국 아마존에 입점해 판로를 확대했다. 최근에는 일본 플랫폼 큐텐재팬에도 입점했다. 몽골의 경우 한류 영향으로 제품 선호도가 높고, 심플한 디자인과 한글 로고가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덥고 습한 동남아 지역에서는 제습제와 곰팡이 제거제가 인기다. 현지 기후와 생활 환경에 맞춘 제품들을 주로 수출하고 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사람을 믿고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학창시절 당구장 앞에서 군고구마도 팔았고, 파푸아뉴기니에서 노트북과 중장비를 팔아봤다. 이후 IT(정보·통신) 회사를 차렸는데 지인의 추천으로 망고 퓌레를 수입해 성공을 거뒀다. 어떤 일을 하든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희 사무실 공간의 절반 이상은 직원들이 놀고 쉴 수 있는 휴게공간이다. 게임기와 안마의자도 있고, 혼자 쉴 수 있는 방도 있다. 회사에 MZ 직원들이 많은데 그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높이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내년이면 회사 창립 10주년이다, 소감은.
“감회가 새롭고 뿌듯하다. 2014년 공동창업자들과 생활공작소라는 브랜드를 만들면서 레드오션인 생활용품 시장에 뛰어들어 시행착오가 많았다. 소비자의 관심을 얻으려면 어떻게 차별화를 해야 할까 고민도 많았다. 그래도 기본을 지키고 어디에 둬도 어울리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저희의 방향성이 소비자에게 잘 전달돼 회사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소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사용하는 일상의 모든 생활용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다만 내년은 다음 10년을 위해 어떻게 브랜드를 확장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실험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특히 로컬, 숙박, 문화 예술 등 다양한 공간과의 접목을 통해 생활공작소가 가진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려 한다. 생활공작소가 어떠한 공간과 콘셉트에도 잘 어울리고 잘 스며드는 브랜드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