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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널목 Apr 30. 2020

우리도 사랑일까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의 스포일러가 있어요.



대니얼(루크 커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마고(미셸 윌리엄스)는 루(세스 로건)와의 관계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연인 사이의 설렘이 지나간 두 사람의 관계에서 마고는 번번이 루를 유혹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거절당하기 십상이다. 남편을 유혹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냐고 루는 묻지만, 그것은 마고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영화 초반 마고는 멀쩡한 두 다리를 두고도 공항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올라탄다. 마고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걷다가 길을 헤매고 비행기를 놓칠까 두려워할 바에야 차라리 거짓말을 해서라도 스스로 선택을 포기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마고에게 대니얼은 유혹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우선 그와의 만남에는 운명적인 면이 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우연히도 비행기 옆자리고 알고 보니 우연히도 앞집 사람이었다. 이 정도 우연이라면 운명이라 해도 할 말 없다. 공항에서 휠체어에 올라타듯이, 마고는 이번에도 대니얼의 인력거에 올라탄다. 그와의 관계에서는 마고가 먼저 다가갈 필요가 없다. “이제 어떡할 거예요?” 물을 뿐. 이제 마고는 유혹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대니얼이 이끄는 방향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나아간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휠체어에는 혼자 탔는데, 인력거에는 두 사람이 탔다. 결혼기념일, 대니얼의 인력거 위에서 마고와 루의 엇갈리는 시선은 그래서 슬프다. 마고는 그 순간 자신이 올라탄 운명에 동승자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은 그들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지만, 그 바로 옆에서 루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앉아 있다.

 

떠나는 대니얼의 픽업트럭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고는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마고가 두려워했던 것은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놓칠 것 같은 두려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미 놓친 뒤에는 두려움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인력거꾼이 떠나자, 동승자도 자신들이 어디에 도착했는지 깨닫는다. 차라리 루가 모른 척했다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정말로 마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서 마고의 등을 떠민다. 휠체어와 인력거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던 마고는 처음으로 선택을 강요받는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그리고 결정을 내린다. 두 다리로 달리기 시작한다.

 

놀이기구 ‘스크램블러’에 나란히 앉아 있는 마고와 대니얼의 모습은, 인력거 뒷자리에 앉아 있던 마고와 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제 마고의 옆자리는 바뀌었고 두 사람은 “어둡고 음악도 나오는데 엄청 빨라서 아무 짓도 못”하는 그 놀이기구에 몸을 맡긴다. 인력거 뒤에서 시선이 엇갈리던 루와 달리, 대니얼은 마고와 눈을 맞추고 두 사람 사이로는 음악이 흐른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정사 장면이 스크램블러와 거의 동일한 동선으로 회전하는 카메라로 촬영되었다는 점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그러나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깜박 잊는 것이 있다. 그들은 끝없이 앞으로 질주한다고 느끼지만 회전하고 있을 뿐이고, 음악이 그치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음악이 그친 후 마고는 이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새 것도 낡은 것이 되고 반복되는 권태 위에 회한이 더해진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고를 꾸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의 원어 제목 <Take This Waltz>는, 그런 선택을 권유하고 있으니까. 겪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알고 있어도 되풀이하는 일들이 있다.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져도,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흐르던 놀이기구 위에서 마고와 대니얼의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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