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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널목 May 09. 2020

에이미

<에이미>(Amy, 2015)에 담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은 그리스 비극과 너무나 닮아 있다. 데뷔 전 어린 에이미 하우스는 분명하게 말한다. 자신은 유명세나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고. 자신에게 행복은 좋은 사람들과 음악을 하는 것뿐이라고. 그러나 이미 그의 죽음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 그 말들은 가혹한 신탁처럼 들린다. “너는 결국 유명해질 것이고 그 유명세가 너를 죽게 만들 것이다.”


이미 있는 사진과 영상만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감독은 이를 독특한 방식으로 배열하며 비극을 ‘연출’한다. 브릿 어워즈 수상 장면이 대표적이다. 객석의 박수를 받으며 시상대에 올라가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길게 늘인 영상 위로 그의 인터뷰가 보이스오버된다. “제가 유명하다고 느끼면 아마 자살할 걸요.” 그의 죽음은 좁은 의미에서의 자살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타살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의 영상과 인터뷰를 병치시킴으로써,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은 그의 복잡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분명히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결국 유명해졌고, 그 유명세에 짓눌려 스스로를 죽음에 내몰았다는 것. 그러나 그가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객석에 앉아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그 광경에 환호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드러낸 주제가 아무리 뼈아프더라도, 비극적 플롯 안에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감독이 허구의 캐릭터처럼 사용했다는 혐의는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부, 그러니까 <Back to Black> 앨범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까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모습은 생명력이 넘친다. 유년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 블레이크와의 만남과 이별에서 느낀 슬픔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 플롯이라는 관점에서, 앞선 두 번의 시련은 <Frank>와 <Back to Black> 앨범을 통해 각각 극복되었다. 이는 직설법에 가깝게 표현된 노랫말(“너는 그녀에게 돌아갔고 나는 어둠 속으로…”)과 그 노랫말을 부르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표정과 목소리로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된다. 좋은 배우가 종종 작품을 능가하듯, 에이미 와인하우스 역시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세 번째 위기 앞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성공을 바라지도 않았던 사람에게 감당 못할 정도로 큰 성공이 닥쳤고, 그 여파로 함께 음악을 하던 “좋은 사람들”과 멀어졌다. 이제 에이미 와인하우스 곁에는 유년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버지와 (아마도 아버지와 동일시했을) 블레이크만이 남았으나, 그들은 성공의 전리품에 불과했고 사실 그마저도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음악으로 거둔 성공이었으나, 그 탓에 역설적으로 더 이상 음악 작업에 집중할 수 없게 됐다. 영화 후반, 음주와 약물 복용 그리고 섭식장애로 망가져가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새 앨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은 마치 살고 싶다는 호소처럼 들린다. 토니 베넷과의 작업 이후 잠시 호전되었던 모습을 기억할 때, 그가 만약 세 번째 앨범을 만들었다면 앞선 두 번처럼 스스로를 치유해냈을지 모른다.
  
파파라치들에 의해 촬영된 영상들이 사용된 영화 후반부에 유독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에는, 아마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탓이 클 것 같다. 그러나 파파라치들만이 그를 괴롭힌 것은 아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파파라치들에 의해 무력하게 사생활을 노출하고, 무대 위에 텅 빈 표정으로 서 있을 때, 돈벌이에 혈안이 됐던 그의 남편과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또 가십을 소비하며 대중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비록 파파라치에 의해 촬영된 영상이 포함되었지만, 아시프 카파디아는 이 영화를 통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일말의 진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보여준 진실들이, 이 작품의 윤리에 대한 손쉬운 비판보다 가치 있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그래미를 손에 쥔 순간보다 시상자가 토니 베넷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 순수하게 빛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표정. 뻔한 소리처럼 들릴 거라고 그는 걱정했지만, 우리는 이제 그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진정 원한 건, 성공이나 유명세 따위가 아니라 단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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