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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a Mar 06. 2021

나의 서촌, '동해 남부선'

역사를 함께한(?) 단골집

"바다의 포식자"

내가 내 스스로에게 붙인 별명이다. 그만큼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고 특히 안주로 먹는 해산물을 좋아한다.

광화문 재직 시절, 경복궁역 인근 서촌이 한창 뜨고 있을 때 였다. 옛스러운 길에 아기자기하고 트렌디한 상점이 있는 이색 데이트 코스로 서촌이 유명해지던 시절, 나는 조금 다른 서촌에 꽃혔다.


신문사 선배들은 맛집을 많이 알았다. 오래된 맛집들이 즐비한 광화문 인근은 노포 들의 천국이었고, 술꾼 집합소인 이 회사 사람들은 술맛좋은 노포, 포차들을 기가막히게 찾아냈다. 사람들이 말하는 '서촌' 조금 못미쳐, 경복궁역 2번출구 앞에 있는 작은 먹자골목 '세종음식문화거리'는 선배들이 알려준 보석같은 동네이자, 내가 말하는 나의 '서촌'이었다.


'서촌계단집' 은 방송에 나오기 전 부터 이미 인근 직장인들 사이에 아주 유명한 해물 포차였다. 거기 줄을 서기 위해 팀 막내를 먼저 칼퇴시켜 대기표를 뽑아놓는 것은 기본, 이렇게 해도 대기표 50번대를 받기 일쑤였다. 물론 줄서서 들어간 맛집은 소문대로 싱싱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밖의 대기손님은 물론 내부도 꽉찬 그 집은 어수선했고, 덩달아 일하시는 분들도 너무 바쁘셔서 어쩐지 안정적으로 취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 바로 옆집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한 느낌의 안주를 파는 비슷해보이는 해물포차. 그때부터 나와 그집 '동해남부선'의 인연은 시작됐다.


나의 베프이자 술친구 S와는 서촌에서 자주 만났다. 광화문 인근 출입처를 들락렸던 그 친구는 업계도 같고, 입맛은 더욱 같아 아주 죽이 잘맞았다. 해물, 그 중에서도 날 것 안주에 탐닉하는 우리는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것도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부터 줄서는 그 집은 거들떠 보지 않고 그 옆집인 남부선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게 된 것 같다.

'단골집':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서비스도 더 주고, 나의 일행도 반겨주는 집   

나에게 드디어 처음으로 '단골집'이란게 생긴 것은 전적으로 친구의 힘이 크다. 나는 사실 어딜 가서도 먼저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나의 이 친구는 편의점이든, 택시든, 술집이든 먼저 친근하게 인사와 말을 건넨다. 둘이 몇 번 함께 이 가게를 찾았을 때, 친구가 먼저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를 건넸다. 갈때마다 친절하게 맞아주던 젊은 남자였다. "우리 여기 자주오는데, 기억 하세요?" 등의 서비스 안주를 얻어낼 수 있는 멘트였던것 같다. 너무 어리고 젊어서 당연히 알바생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그 집 사장님 아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나와 친구는 사장님 후계자라며 그분을 '젊은 사장님' 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렀더니 나에게 와서 '꽃'이 된 김춘수의 어느 시 처럼, 우리가 '사장님'으로 불러준 그 집은 우리에게 다가와 '단골집'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근 7년째 그 집은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가게가 됐다. 매번 프로젝트 끝나는 날이면 후배들을 데리고 와 뒤풀이를 하고, 친구의 생일 파티를 하고, 지금의 남편과도 연애시절 부터 숱하게 데이트를 한 역사의 집이 됐다. 상암으로 이직하고 나서도 나는 서촌을, 남부선을 잊을 수 없어 웬만한 약속은 여기서 많이 잡았다. 나를 알아봐주시는 사장님에 대한 일말의 의리랄까... 그리고 올해 여름,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에도 상암동 후배들을 서촌으로 모조리 끌고와 송별파티를 했더랬다.


안주는 다양하다. 해물포차 특성상 계절마다 메뉴가 바뀐다. 재미있는 점은 계단집과는 조금씩 다른 메뉴를 판다는 점이다. 계단집이 정말 계절에 충실한 보편적인 메뉴를 취급하는 집 이라면, 이집은 조금 다른 특색이 있다. 제주 딱새우 회, 기장 멸치회, 고등어 초절임 등 서울에서 맛보기 힘든 지역 특색의 음식을 판다. 이 밖에도 참소라 숙회, 돌멍게, 꼼장어 등이 이집의 시그니쳐 메뉴들이다. 메뉴판에 있지도 않은 해물라면도 별미다. 메뉴에 정식으로 써있지는 않지만, '라면하나 주세요' 하면 딱새우와 홍합, 소라 등 갖은 해물이 들어간 큰 양은냄비 라면을 내어준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너무 가고싶다. 코로나때문에 서촌에 가본지도 오래됐다. 우리 사장님은 잘 계시겠지....


오늘 가서 따끈한 홍합국물과 달큰한 딱새우회 한점 안주로 소맥 한잔 말아 들이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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