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Sep 03. 2023

서이초 선생님을 추모하며

지난 18일 스물셋 초등학교 교사가 근무처인 학교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데 이 일이 어디서도 공론화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19일 트위터에서 봤다. 원글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이튿날인 20일부터 언론들이 각종 보도들을 쏟아냈다. 선생님의 죽음을 둘러싼 추측성 기사가 난무하는 가운데 21일 서울 교사노조의 입장이 올라왔다. 이로서 사실관계가 분명해졌다. 보조자료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그 후 정권의 나팔수들이 충직하고 빤뻔하게 다분히 의도적으로 교사의 죽음을 우울감에 의한 개인사로 몰고 가려했으나 시민들의 냉소만 샀다.


물론 이후에도 외람이던가 기레기인가들은 여전히 진실 은폐와 본질 흐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교사는 을이 아니라는 둥, 김어준 같은 이들이 만드는 가짜 뉴스가 더문제라는 둥. (털보는 아주 동네북이구만)


그래서 민족정론지 딴지 일보가 나섰다. 읭? 전지적 찬사 피해자 시점에서 서이초 교사의 자살은 자살이 아니리 타살이다. 이는 명백한 사회적 살인이다. 누구라도 이런 처지에 있으면 극단적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으리라. 생각해 보라. 어려서부터 꿈인 선생님이 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해 교육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현실에 나와 보니 “너 까짓게” “감히” 같은 정서적 학대를 당해야 한다.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없다. 학교 측은 자꾸 참으란다. 일을 키우지 밀란다.


그 누가 견딜 수 있을까. 사람은 말이다. 건물에도 깔려 죽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과 권력에도 깔려 죽는다.

다시 말해 서이초 선생님은 죽은 게 아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랑은 아니다만 삼풍사고 생존자이자 자살 유가족이고 또 과거 자살시도 경험자로서 자살하는 이의 심정을 이쯤에서 다시 한번 더 유추해 보자면 아마 그는 외로웠으리라.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두려웠으리라. 막막하고 절박했으리라.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았으리라. 사는 건 어렵고 죽는 건 쉽다 생각했으리라.

이 일을 두고 현직 교사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학부모는 갑이고 교사는 을도 아니고 을조차도 안 된다고 말이다. 공교육 붕괴, 교권추락, 교권하락 이런 얘기들은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문제 제기가 있던 일이었다고 말이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고 말이다.

착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일단 조문이라도 가보자 싶어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어쩔 수 없이 서이초 선생님과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떠나간 다른 무고한 이들을 떠올렸다. 이 한빛 피디를 떠올렸고 구의역 김 군도 생각했다. 얼마 전 분신하신 건설 노조 노동자와 SPC 노동자도 기억했다. 너무 많은 안타까운 죽음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다. 그렇다. 이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멀리 세월호까지 갈 것도 없다. 천지가 참사고 사시사철 애도기간이다.

주변 도로가 복잡할 것 같아 차를 두고 가려고 했으나 노쇄한 몸을 이끌고 이 더위에 열차를 장시간 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건강하게 오래 살며 이런 일 있을 때마다 계속 떠들려고) 인근 상가 유료주차장에 주차할 생각으로 차를 끌고 갔다. 월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상가 주차장도 학교 주변도 한산했다. (업무 참조 하시라, 단 주차비는 비싸다)


지도에 보이는 학교가 가까워 지자 검은 옷을 입은 조문객들이 눈에 보였다. 그 보다 더 눈에 띈 건 학교 담벼락을 빼곡히 채운 조화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동료 교사들이 화환을 보냈다. 선배가 후배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리본에 적힌 문구들은 하나같이 전부 먹먹했다.

정문 분향소에 가 한 구석에 별도로 마련된 국화꽃을 올리고 잠시 묵념을 했다. 영정도 고인의 사진도 없었다. 이태원 참사가 떠 올랐다. 또 지우는구나 누군지 알면 국민들의 감정이 격양될 거고 그러면 또 골치 아파지니까, 익명이 백 번 낫지. 당신들 입장에서는이라는 합리적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구나.


그뿐 아니었다. 현장에서 연이은 참사로 애도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분들도 계시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 추모가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막걸리인지 말인지 모를 말도 함께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 누군지 몰라도 부럽더라.


스물셋 꽃 다운 청춘이 억울한 일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도 그 앞에서 ‘피로’ 운운할 수 있는 그 단단한 마음새가 아주 현 정권과 (말 줄임)

학교 도처에 연대를 약속하는 다짐들이 도배되어 있다. 또 남의 일이 아니라는 각성, 다음엔 내 차례일 수 있다는 두려움의 문구들이 빼곡했다.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대한 요구도 많았다. 흔들림 없는 반듯한 필체들이 유독 먹먹하게 다가왔다.

고인은 2000년생이라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순간 이미 태어난 젊은이들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출산율을 장려하고 저출산 대책을 내놓는 게 우습게만 여겨졌다.

학교 곳곳에 내 걸린 여러 시민들의 마음을 읽으며 만약 이 많은 사람들이 생전에 선생님 편에 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덧없는 이야기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서울 한 복판에서 그것도 2023년도 교단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혼자 감당하시기 얼마나 힘드셨으면 창창한 그 나이에 모진 결단을 하셨을까.

학교를 돌이 나오는데 일전에 친한 동생이 “교권추락” 관련해서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게 생각났다. 당시엔 그 얘기를 심각하게 안 들었다. 그도 그럴게 모든 인간의 판단 기준은 경험이고 내 경험상 선생님은 절대 권력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선생님들이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줄은 몰랐다. 전혀 몰랐다. 새삼 미안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서 보니 빙 둘러 울창한 아파트 숲이 초등학교를 에워 싸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 안에 분명 가해자들이 있을 것이다. 다들 커튼 뒤에 숨어 서이초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란 듯이 학교를 돌아다녔다. 봐라 당신들 똑바로 봐라. 당신들은 이 일을 얼른 덮고 싶고 지우고 싶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우리 시민들은 진심으로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러니 이 글을 부는 분들은 시간 내서 한 번씩 (드레스코드: 검정) 서이초에 가 주셨으면 좋겠다. 가서 우리가 잊지 않았음을. 선생님은 혼자가 아님을 세상에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나도 앞으로 틈 나는 대로 가서 운동 삼아 운동장 한 바퀴씩 돌 거다. 그렇게 여기 이 일에 슬퍼하는 사람들 있다고 세상에 외칠 거다. 그래야 변할 테니까. 그래야 이런 식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 안 그러면 제2의 제3의 서이초 선생님은 계속 생겨날 테니까.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참을 수 없는 어느 부부의 이중성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