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만언니 Jun 02. 2024

일기를 쓰자

남들이 봐도 좋을 일기를 쓰자 일기는 재미있다.

어제는 집에 오랜만에 손님이 왔다. 전에 팟캐스트를 같이 했던 판교 공돌이다. 포천에서 직접 재배한 텃밭 채소와 닭요리 그리고 직접 담근 김치와 피클 그리고 전날 따 둔 와인 한잔을 내줬다. 친구가 대접받는 기분이라고 말해줘서 좋았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친구라 당연히 고수를 먹을 줄 알고 샐러드에 고수를 넣었는데 “고수 먹죠? “ 하는 내 물음에 친구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비누 맛이 나는 고수를 어떻게 먹냐고 했다.


나는 어째서 그 친구가 “당연히 ”고수를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이를 통해 인간은 얼마간의 노력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끝없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구나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참고로 고수는 벌레가 많은 아열대 지방에서 자라고 모기가 싫어하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 고수와 같은 향신료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건 전에 인도네시아 여행할 때 들은 얘기다. 이렇게 좋은 고수를 왜 못 먹지? 안타까웠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사고)

친구와 많은 얘기를 했고, 나눈 얘기들이 전부 재미있었다. 이 친구는 전에 ”지대넓얕“ 분당 토론 모임에서 만났다. 역시나 둘의 랜덤 주제 토론은 재미있었다. 얘기 끝에 그에게 우리의 얘기가 둘만 나누기엔 지나치게 재미있지 않나요? 남들도 다 좋아할 얘기 같은데...유튜브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운을 띄우니. 그가 단박에 아니라고 한다 전에 팟캐스트 해 봤는데 그때도 안 되지 않았냐고.

그러게.


늘 느끼는 건데 뭐든 항상 애매한 게 문제다. 앞으로 나서기도 뒤로 물러서기도 힘든 어정쩡한 재능 같은 것들. 특히나 그 재능이 예술적으로 있으면 그것은 평생에 걸쳐 고통이 수반되는 저주.


내게도 이런 재능이 있다. 가만히 있기엔 조금 잘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 걸 가지고 본격적으로 뭘 하기엔 모자란. 그렇다면 내 선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쏘 심플.


요즘 SNS를 지나치게 많이 하고 있다는 각성을 했다. 블로그 (한 대여섯 명 보는 친구공개 블로그), 인스타, 트위터, 페북, 브런치. 이렇게나 많은 곳에서 산발적으로 글 쓰기를 하면서 정작 내 글은 못 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부터 매일 여기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어제 그 친구랑 얘기하다 깨달은 건데 인간에게는 그 사람을 관통하는 하나의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게임을 해도 나는 주로 육성 게임을 하고 (뭔가를 키우고 수확하고 캐릭터를 레벨업 시키는) 그 친구는 주로 전략 게임을 한다. (전략 짜고 기획하고 전쟁 나가는 게임) 그런데 둘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다. 나는 끊임없이 뭔가를 만들고 배우고 나아지고 성장하는 걸 좋아하며 부산한데, 이 친구는 현실도 똑 부러지게 허튼짓 안 하며 에너지 낭비 없이 전략적으로 산다.


또 나는 일을 앞뒤 안 재고 벌이는 스타일이고 이 친구는 내가 벌이는 일을 잘 추스르고 정리하는 스타일이다.

갖고싳다

테무와 알리를 최근에야 하기 시작했다. 이 토록 싼 가격에 이 많은 걸 살 수 있다고 눈알이 팽팽 돌아 미친 듯이 주워 담았다. 그러다 두 번째 소포를 받고서야 더는 돈 주고 쓰레기더미를 사지말자 생각했다. 사실 이런 데서 사는 물건은 대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내 기준) 그러니 지구를 생각해서, 우리 털 친구들이 직면한 기후위기를 생각해서 나라도 노력해야 한다.


사람 마음 참으로 간사한 게 알리 테무를 하기 전에는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제품 사는 것도 약간 길티 했는데 이제는 단지 중국에서 직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이소에서 플라스틱 제품을 사는 게 떳떳하다. 다시 머리에 힘을 줘야 할 시기다. 살면셔 내가 쓴 모든 칫솔은 여태 전부 썩지 않았고 내가 죽은 후에도 오백 년이나 살아있다. 쓰레기를 줄이자. 할 수 이 따.


서진이네 개들을 맡기고 오랜만에 여유로운 주말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에 눈 떠 부스럭거리면 득달같이 찾아오는 녀석이 없으니 조금 허전하긴 하다.

하지만 허전한 마음보다 돌봐야 할 개가 없다는 사실이 주는 심신의 안정이 너무 크므로, 모든 일정이 다 끝나면 찾아 올 생각이다. 나 아닌 다른 생명체를 돌 본다는 건 그게 꼭 인간이 아닐지라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새삼 느낀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