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에 홀로서기
요즘 읽고 있는 책이다. “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 원제는 아마도 Adult Surivivors Of Toxic Familiy Member 아닐까. 국어로는 Toxic을 “해로운” 으로 번역했던데, 딱 맞아떨어지는 번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Toxic은 중독을 기반으로 한 해로움 이니까. 말하자면 중독적이고 유해하다는 것을 알지만 끊어내기 힘든 해로움? 어렵군./머리를 긁적이며/
이 책을 별 고민 없이 산 건 나 역시 해로운 가족을 몇 해 전 끊어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전 정신과에 처음 갔을 때 선생님은 내 가족관계와 성장과정을 잠자코 듣더니 원가족이 정상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역기능을 하고 있으니 하루속히 가족을 끊어내라고 했다. 당황한 나는 선생님께 예? 엄마를요? 오빠를요? 하며 재차 물었지만 선생님은 굳은 얼굴로 단호하게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이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친구도 애인도 아닌 가족과 이별한단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정신과 선생님은 그때부터 내 모친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정신과 용어인데 ”자기애성 성격장애“ 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개념도 흔치 않았고, 또 그때의 나는 내 엄마가 나를 몹시도 사랑하고 있다고 굳세게 믿고 있던 터라 선생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후에 내 엄마는 스스로 선생님의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해 갔다.
물론 이제와 내가 모친이 나를 낳고 기르며 사랑했다는 그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는 건 아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 엄마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방향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왜냐면 그 사랑을 받는 내내 나는 몹시도 불편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였고 엄마가 어른이었을 때 엄마는 제대로 된 어른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없이 살아서, 먹고 사느라 바빠서” 같은 허울 좋은 핑계들을 참작하더라도, 그때 했던 엄마의 행동들을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또 어려서부터 나는 정서적으로 모친에게 끌려 다녔다. 단지 내가 딸이라는 이유로 모친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했다. 틈만 나면 자신의 신세 한탄을 늘어놓았고, 그때마다 나는 그런 그를 가슴 깊이 동정해야 했다. 또 모친은 항상 내 아버지와 우리 본가 욕을 내게 했기에 어린 마음에 난 괜히 엄마를 따라 아빠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싫어했다.
하지만 글쎄 이제와 생각해 보니 잘 모르겠다.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니까.
집안에서는 노상 큰 소리가 났다. 도대체가 우리 집은 부모 형제라는 사람들이 다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서로 멱살을 틀어쥐고 싸웠다.
그곳은 집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아무렇지 않게 화분이 공중에서 날아다녔고 선풍기가 바닥에 내려 꽂히곤 했다. 날이 갈수록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는 망가졌다. 참혹했다. 덕분에 나는 원가족을 떠 올리면 가장 먼저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에 먼저 사로 잡힌다. 함께 살을 맞대고 사는 동안 이들은 정말 서로를 끝없이 원망하고 증오하고 경멸했다.
그러던 어느 날 끝내 아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더 이상의 전쟁은 견딜 수 없다는 듯 갑자기 그가 떠나갔다. 영안실에서 본 아빠는 힘든 경기를 가까스로 마친 권투선수 같았다. 피곤해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이로서 집안에서 더는 야만적인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 일로 나는 깊은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거짓말처럼 나는 삼풍 사고까지 겪었다. 이후 내 영혼은 완벽하게 산산조각 났다.
이때 조각난 영혼을 그러모아 다시 꿰매어 똑바로 세워 놓는데 이 십 년이 넘는 세월을 쓴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많이 방황했고, 많이 아팠다.
아빠의 죽음 이후 비어있던 가장의 자리에 가족들은 집안에서 가장 어린 나를 앉혔다. 아니 어쩌면 내가 스스로 가서 앉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저 가만히 앉아 어쩔 줄 몰라했으므로.
아니 그래 백번 양보해서 나 스스로 집안의 가장을 자처했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전부 갓 스무 살이 된 내게 태연하게 기대고,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의존했느냐는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도무지 이 대목만큼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꽤 오랫동안 내게 주어진 가장 역할에 충실했다. 언제나 부지런히 돈을 벌어 그들에게 계속 쏟아부었으니까. 그리고 이들은 노상 내게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내가 주는 돈을 받아썼다. 사고 이후 죽다 살아나 받은 내 보상금까지 다들 전부 싹 다 남김없이 말이다.
뿐만 아니다. 모친은 꽤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내게 가스라이팅을 했다. “난 너 없으면 나는 못 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없으면 못 산다. 널 위해서라면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다. “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사랑한다는 딸을 위해서 정작 모친이 따로 뭘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내 기억 속에 그는 항상 내게 의존하려고만 했으니까.
언제나 모친은 무슨 일이 생기면 득달같이 내게 연락했다. 절대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위로 오빠가 둘이나 있지만 항상 나부터 찾았다. 형광등이 나가도, 티브이가 고장 나도, 친구한테 배신을 당해도 몸이 아파도 늘 내게 먼저 연락했다.
언제 한 번은 이 일로 불같이 화를 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나만 바라 보고 살 거냐고. 내가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이러느냐고. 그러자 모친이 말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두 눈을 껌뻑이며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했다. 한 마디로 그에게 이렇다 할 대책이라곤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모친이 나를 사랑했다는 그 마음까지 의심하는 건 아니다. 나는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지독히도 일방적이었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거다.
어려서는 몰랐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 엄마가 정말로 나를 사랑했다면 되도 않는 공허한 맹세나 지키지 못할 약속 같은 게 아니라 “행동” 으로 보여줘야 했다고 생각한다. 말은 쉽다. 말로는 뭔들 못하랴.
언제 한 번 곰곰이 모친이 여태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을 위해 자신을 양보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글쎄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연탄불 피우고 다 같이 죽자고 하지 않은 것? 그거 밖에는 생각 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독하게 마음먹고 모친을 포함한 원가족과의 관계를 끊었다. 안 그러고는 내가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 뒤치다꺼리하다 보니 내 나이도 어느새 오십 줄이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샜다. 그러니 언제까지 이렇게 산단 말인가.
모친과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 그에게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말고 앞으로는 당신들끼리 알아서 잘 살라고 하는데 그 순긴 어쩌면 나야말로 이들 중 가장 ‘이기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렴 어떠랴. 이제 더는 나도 물러설 곳도 없다.
아마 모친이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이 된 데는 여러 상황이 맞물렸으리라. 전쟁 이후 녹록지 않았던 성장 환경과 유전적인 기질 같은 것들. 그런데 이제 나는 그 원인이 뭐였던지 간에 상관없다. 모친의 이런 가질 덕분에 우리 가족은 전부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본인 스스로도 지금 그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 어찌 보면 이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당사자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모친을 생각하면 그냥 안타깝다. 속 상하다거나 가엽다는 마음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대 인간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는 그들에게 화도 안 난다. 단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속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나한테 입을 모아 어머니 돌아가시면 후회한다고 그러지 마라. 하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그깟 후회가 무슨 대수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나는 나를 지키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