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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가장 오래된 건물 미션 돌로레스

6th 미션 샌프란시스코 드 아시시

b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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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사람이 거주한 고고학적인 증거는 기원 전 3,000년 전부터라고 한다. 유럽인들에 의해 발견되기 전에는 아메리카 인디언 '오흘론(Ohlones)부족이 여러곳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베이 지역을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 (영국인 프란시스 드레이크(Sir Francis Drake, 1540년경~1596년 1월 27일)가 그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은 1769년 11월 2일 스페인 탐험가 돈 가스파 드 포르톨라(Don Gaspar de Portola)와 후안 크레스피( Juan Crespi)신부였다.

그후로 7년 후에 호세 호아킨 모라가 (Jose Joaquin Moraga)와 프란시스코 팔로우 (Francisco Palau)는 이 지형이 제공하는 자연의 혜택을 신속히 파악하여 1776년 6월 29일에 미국 식민지가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기 5일 전(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에 미션을 세웠다.

선교부는 프란치스칸 교단 창립자인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서 미션 샌 프란시스코 드 아시시(Mission San Francisco De Asis)로 명명되었으나 아로요 드 로스 돌로레스 (Arroyo de los Dolores) 또는 '슬픔의 샘 (Creek of Sorrows)'이라고 불리는 개울과 가까운 위치때문에 '미션 돌로레스 (Mission Dolores)'로 알려지게 되었다. 소수의 정착민과 군인들에 의해 미션 돌로레스는 급속도로 성장했으며 미션 건물은 샌프란시스코 전체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중요한 건물이 되었다.


미주내에 최고의 미항으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에 고색 창연한 바로크의 위풍과 오래된 건물에서 느끼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미션 돌로레스'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가장 오랜 건물인 이곳은 하루 200~900여명의 관광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흰색 건물의 미션에 들어서면 1906년 대지진을 견디며 2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딘 예배당이 나온다. 작은 예배당 곳곳에는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 가톨릭을 전하던 초기 정착인들이 성경 혹은 창을 든 모습으로 곳곳에 서 있다. 북아메리카로 향한 포교의 모습이나 그들의 침략을 볼 수있는 기록이다. 오래된 미션을 나서면 오른쪽으로는 새로운 대성당인 '바실리카' 즉,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교회법에 따라 특정 교회 건물들에 붙이는 명예로운 이름인 '바실리카'로 지난 1952년 교황 파이어스 7세가 이 대성당에 붙여준 이름으로 이곳이 지역 성당의 위엄을 넘은 곳임을 알려준다.



미션 설립 초기 이후인 1782년 이 지역 원주민인 오흘론 부족과 미워크 부족민들이 징집되어 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천장에 새겨진 아메리카인디언 광주리 모양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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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미션 돌로레스 건립 200주년을 맞아 지어진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240여년 전 건립 당시 36,000여개의 벽돌 중 일부와 인디언 부족의 옷. 생활용품. 주거 형태의 모형 등 베이 지역에 샌프란시스코가 생길 즈음의 모습들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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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John Paul II 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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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물관 문을 열고 뒤뜰로 나서면 미션의 묘지내에 있는 오흘론 부족 오두막 복제품, 이는 1814년과 1826년에 돌았던 홍역으로 죽은 오흘론 부족과 미워크 부족인 5000명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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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페로 세라 신부의 상과 1987년 방문한 요한 바오로 II 세(Pope John Paul II)의 기념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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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서 바라본 1913년에 건설된 바실리카 예배당의 탑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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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미션은 한 번도 전성기를 누려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날씨가 좋지 않았으며 땅도 모래가 많아 농사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미션 샌프란시스코 드 아시스는 1832년 멕시코 정부의 미션 세속화 정책에 의해 세속화된 후 줄곧 방치되다가 1849년부터 시작된 골드러시가 샌프란시스코를 바쁜 도시로 탈바꿈시키더니 이 시기에 밀려든 사람들이 미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조용했던 미션은 번잡한 곳으로 점점 변해갔다.

세속화된 이후 미션은 주로 경마장이나 도박 장소로 쓰이고 때론 선술집이 되기도 하였다. 가장 순수한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만들어진 미션이 세월의 부침에 따라 가장 세속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기도 했던 것이다. 원래 세워진 올드 미션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성당(위에 언급한 지금의 바실리카 성당)도 골드러시 때 많은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로 유입되면서 이들을 위한 종교적 행사를 치르기 위해 더 큰 교회가 필요하게 되어 원래의 올드 미션 옆에 세운 것이다.
올드 미션과 새 교회는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 변하는 세월의 흔적은 우리에게 역사로 남겨지고 있다. 인디언들이 정성으로 만들었던 올드 미션은 1906년 대지진 때도 무너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되었으며, 새로 지은 교회는 올드 미션보다 더 크고 나중에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진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기술의 발전과 크기가 옛것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생각은 현대문명의 빛과 그늘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1906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무너진 바실리카 대성당과 올드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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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해 도시가 형성된 7 월 1 일에는 7월 첫 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기념식을 올드 미션 돌로레스에서 종을 울리며 시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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