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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MSUPERFINEMOON Dec 04. 2020

매일 아침, 역사와 마주합니다.

부평의 미군기지, 매일 집을 나서면 보이는 역사입니다.

#1 멈춰있던 캠프마켓의 시간이 흐르게 되었어요.







 왜 캠프마켓(CAMP MARKET)인가요?

집을 나서면 마주하는 역사, 캠프마켓(CAMP MARKET)


제가 매일 아침 문을 열고 나오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미군기지예요.

어릴 때부터 지금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보니 저에겐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어요.

늘 있던 곳이고 늘 보던 곳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긴 모습인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부평에 미군기지가 있다는 걸 모르더라고요.

매일 보는 풍경이다 보니 작년 여름 태풍으로 인해 건물 하나가 타격을 입은 것도 보고, 그 건물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지요.






<제2회 부평 캠프마켓 시민생각 찾기, 2019>



작년, 인천도시공사와 함께 부평 미군기지(이하 캠프마켓)에 관한 행사를 개최하는 기회가 찾아왔어요.

저에겐 당연하고 익숙한 풍경이지만 의미와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지요.

캠프마켓을 대하는 저의 생각이 변화하다 보니 제가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고요.

관심이 이렇게 생겼는데 기록하지 않고 흘려보내기엔 아쉬워 캠프마켓을 시작으로 동네를 기록하고자 해요.

그 무엇보다도 매일 집에서 나오는 순간 캠프마켓을 마주하는 일상이 저에겐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 왔어요.





다시 시간이 흐르게  

캠프마켓(CAMP MARKET)


금단의 땅으로 여겨 온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81년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다


캠프마켓은 1939년 일제강점기, 침략전쟁을 위한 무기를 제조하는 일본 육군조병창(군수공장)으로 쓰이다 광복 이후에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한 채

주인만 바뀌어 주한 미군의 군수지원사령부인 애스컴시티(ASCOM CITY)로 부평 미군기지가 사용되었어요.

부평 캠프마켓 안에는 12개의 미군 클럽이 운영했고 캠프마켓 바깥쪽, 신촌 일대에도 23개 민간인 클럽이 영업하게 되었어요.

이 덕분에 미국에서 넘어오는 세계 유명한 팝뿐만 아니라, 재즈, 블루스, 팝, 로큰롤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답니다.

이런 과거의 일이 계기가 되어 2015년 부평구는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음악 도시 부평’으로 새로 태어나기도 했지요.



한국 안에 작은 미국, 애스컴시티(ASCOM CITY)


캠프마켓은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했지만 6.25 전쟁 이후 우리의 배고픔 해결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어요.  

캠프 마켓, 캠프 하이예스, 캠프 그란트, 캠프 타일러, 캠프 아담스, 캠프 해리슨, 캠프 테일러 등 7개 구역을 애스컴시티(ASCOM CITY) 불렀고,

풍부한 물자와 일자리가 가득하여지자 사람들이 부평으로 몰리기 시작하죠.











미국의 재료로 한국에서 만드는 미군을 위한 빵


2013년 5월 23일 kbs news 화면


캠프마켓 안에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빵공장이 있습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미군기지로 보내지는 빵이 캠프마켓 안에서 만들어져요.

빵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재료는 모두 미국산!

사람들이 종종 그러더라고요. 빵 맛이 정말 다르다고. 미국의 맛이라고.

한국에서, 그것도 우리 집 바로 옆 미군기지에서 만들어지는 빵이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미국의 맛이라니 너무 궁금해요.

작년 캠프마켓 행사를 하면서 소수의 인원으로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때 혹시나 빵공장에서 빵을 협찬해주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는데… 냄새도 못 맡아 봤네요 T.T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군만 먹을 수 있는 빵이라니 너무 쪼잔하지 않나요?



미국의 집착


미군은 한국에서 미국의 재료로만 빵을 만들어 전국의 미군들에게 전달하는 것만 집착한 건아니예요. (하나만 하라는 법은 없죠…)
캠프마켓이 시민에게 개방될 계획은 올 4월이었답니다. 근데 왜 10월에서야 개방을 했냐 구요?


왜냐하면… 펜스 때문입니다.


현재 캠프마켓은 전부 개방되지 않았어요. 토지 오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아직도 남은 땅은 정화 중에 있습니다.

지금은 야구장 일대만 개방되어 있어요. 전체 캠프마켓의 ¼ 정도(야구장, 야외수영장, 극장, 농구장 등)의 구역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머지는 오염된 토양 정화작업을 마무리하는 2022년 6월 이후 개방으로 예정하고 있고요.


그래서 개방된 구역 이외에는 펜스를 설치해 분리를 해야 했는데, 이 펜스를 글쎄 또 아무거나 안 쓴다네요?!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펜스를 써야 해서 개방이 늦어졌다고 합니다.

올해 코로나가 터지면서 펜스 가져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집착의 끝판왕)







반환된 미군기지의 땅. 기뻐만 할 수 있을까요?

현재 캠프마켓은 야구장 일대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정작 중요한 곳은 볼 수 없어요. 중요한 게 뭐가 있냐고요?

펜스 사이로 들여다보면 우리의 역사를 볼 수 있어요.

펜스 사이로 보이는 석등을 찾으셨나요?
일제의 흔적인 일본식 석등이에요.

이 석등 주위 구역에 과거 일본군 지역 사령관 등이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더라고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절대 잊어서는 안 돼요.






지금도 땅을 파면 그 당시의 동전들이 수두룩...


이 건물은 조병창 주물공장이에요.

조병창은 무기를 만들던 군수공장을 말해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 강제동원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했던 아픈 역사 현장인 ‘일본육군 조병창’인 공장 건물입니다.

조선 팔도 각지에서 가져온 놋그릇과 중국 돈 같은 쇳덩이를 용광로에서 녹여 무기를 만들었죠.

전문가들은 일제가 전국 각지와 중국에서 수탈한 쇠붙이를 캠프마켓 앞을 지나는 철기를 통해 이곳으로 옮겨 무기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실제로 제가 살고 있는 부평 동아아파트 건물을 지을 때 땅 아래서 중국 동전이 많이 출토되었다고 해요.

쇠붙이와 그 시대의 동전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전시할 것을 따로 골라가야 했을 정도라네요.
(이 사진은 작년 답사 때 촬영한 건데 이제 사용해도 되는 거겠죠..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작년엔 사진을 찍는 것만 허락이 되었어요.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순간 미군이…   하지만 이젠 인천시에 반환된 땅이니 괜찮을 거라고 믿고 여러분과 공유할래요)

캠프마켓 커뮤니티 클럽! 식당이 있던 건물이에요. 면적은 약 120평 정도 된다고 해요.

큰 홀 안에 작은 무대 공간도 있었고, 게임방, 간단하게 음료나 술을 마실 수 있는 바 형태의 공간도 있고요.
시민들에게 개방되던 10월 14일에는 이 건물을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다음 날인 15일엔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 있더라구요.

개방된 첫날 이후 들어갈 수 없게 접근금지 된 공간이 좀 있어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들은 충격적인 이유는 쓰레기를 버리고 심지어 큰일(?)까지 본 사람이 있어서 으슥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막아버린 것 같아요.







2020년 10월 14일 시민에게 캠프마켓이 개방되면서 많은 분이 꾸준히 찾아주고 있어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인데, 현재 자원봉사자분들이 관리해주고 계시다네요.



인천시에서는 아직 캠프마켓의 활용 방안을 결정하지 못했어요.
부평 캠프마켓 인근 불법건축물에 대해 강제철거를 진행 중이며,
미군의 허가가 나지 않아 근대건축물로서의 캠프마켓을 조사하지 못했는데
지난달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근대건축물 조사결과를 토대로
캠프마켓 건축물의 활용 가능성, 하부오염 정도 등을 고려해
건축물 존치, 철거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해요.


저는 낡은 것을 힙하다는 명목으로 찾아다니지 않아요.


작년, 인천문화재단의 ‘지역문화전문인력양성과정’을 통해
인천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었어요.
작업 초반에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었는데,
인천시의 행동에 화가 나더라고요.

건축유산의 조사사업, 보존, 활용을 총괄하는 정책이 보이지도 않고,
근대문화유산으로 남겨질 역사를
주민과 협의도 없이 몰래 철거하는 신일철공소의 사태도 있었지요.
심지어 철거된 신일철공소는 10개월 넘게 방치 중이예요.



이런 상황이 저에겐 너무 안타까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저는 사진을 찍어요. 물론 지금은 문화예술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지만,
매일 마주하는 캠프마켓을 시작으로 지역에 살며,
보고 느낀 것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글과 함께 담아내려고 해요.

제가 앞장서서 이런 상황을 막을 순 없지만,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사진을 통해 모두에게 알리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부평에 살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서면 마주하는 캠프마켓을
제가 잘하는 사진으로 담아 지역주민뿐만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캠프마켓의 역사를 알리고, 부평의 줄사택 문제도 알리고 싶어요.
무조건 없애고 새로 무언가를 짓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잖아요.

제 삶에 기반한 관점으로, 제 직업인 사진을 통해
앞으로 여러분께 제가 사는 지역의 상황을 공유하고 싶어요.

서울기록원의 기억, 기록저장소처럼
저도 저의 지역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쓸게요.
일상의 중력에 빠져들어 게을러지지 않도록 저를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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