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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06. 2024

새 달력을 준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벌써 12월.
내년 달력을 준비해야 할 때.
여기저기 거래하는 곳에 전화한다.
"내년 달력, 며칠 나오나요?"

해외여행 가면 기념품을 챙겨 온다.
그곳을 기념할 마그넷, 열쇠고리, 엽서, 스푼, 종, 지하철티켓, 호텔볼펜...
하다 못해 면세점의 립스틱 하나...
냉장고 마그넷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며 그때 그곳을 한번 더 음미.
그중 가장 실용적인 것은 그곳의 풍광이나 문화를 담은 달력.
돌아와 벽에 걸린 그 달력을 보며 일 년 동안, 그곳에서의 추억을 즐긴다.

처음에는 그해가 지나가면 그 달력들을 버렸다.
그림이, 추억이 아깝지만.
지금은 안 버린다.
코로나로 여행 가기도 힘들었던 시간.
추억의 지난 그 달력에다 얻어온 새 달력 날짜 부분만 오려 붙이니 나만의 달력으로 환생.

새해 달력 짜깁기가 끝나면 하는 작업이 또 있다.
내년 365일 날짜 중, 드문드문 사건을 적어 넣기.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가정예배 때, 그 해 우리 가정의 특별한 일들을 대충 여남은 개 뽑는다.
그것들은 그 날짜에 적어 넣는다.
기뻤던 일, 힘들었던 일, 그리고 특별한 일.
해가 거듭될수록 누적되어 적을 것이 많아진다.

가족들의 생일. 가족 한 명 한 명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
이유 모를 출혈로 반년 간의 나의 입원생활 퇴원한 날.
이제 끝이다 싶었는데 뜻밖에 남편이 승진한 날.
아슬아슬하게 딸이 수시 합격한 날.( 정시시험날, 딸은 맹장수술로 병원에 있었다.)
특별한 아들, 음악 하는 딸에게 참으로 고마운 선생님들을 주신 날.
막막하고 힘들었던 아들의 장결핵치료가 끝난 날.
장애인 교육시설에 아들이 이곳저곳 다니다가, 이젠  정말 끝이구나 집에서 나랑 종일 있을 수밖에 없구나 할 때, 불쑥 나타난 더 좋은 교육기관 등록일.
새 차를 주신 날.
새 집을 주신 날.
늦게 시작한 새 일로서 첫 월급을 받은 날.
.
.
.

인간은 망각의 동물.
감사는는 하루가 채 못 간다.
그때는 그 때라 하고 현재 일로 힘든다.
인간은 욕심덩어리.
다고 다고 또 받으려 한다.
물속에 빠진 자 건져놓으니 내 보따리 없어졌다고 불평하는 나의 모습.
그러나
이렇게 달력에 적어놓고 해마다 그 일을 반추하니  조금이나마 그분의 손길을 생각하게 된다.


날마다 순간마다 내 앞에 두려운 일 본다.
오늘 일을 보면 막막하나
되돌아보면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바쁘셨다.
눈앞의 근심에도 안도의 심호흡을 크게 해 본다.
오늘이 막막하면
어제의 일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사야서 46장 9절의 말씀을 주셨나 보다.
'너희는 오래전에 있었던 옛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나와 같은 자도 없다'
그래서
히브리 민족은 여기까지 인도하신 보이지  않는 그분을 잊지 않으려고  보이는 '에벤에셀의 돌'을 놓았구나.

절기를 지키며 다시 끈을 부여잡는다.

달력 날짜 밑에 사건이 적힌 날 만 기적의 날인가?
 매일 매 순간이 기적이지.
이런이런 일로,  생명이 연기처럼 훅 사라지는 일이 어제도 오늘도 일어났다.
지금 살아있음이 기적인걸.
46초마다 내 몸의 피가 한 바퀴 돌며
하루에도 주먹만 한 심장이 300리터의 피를 퍼내고 있으니 오늘도 나는 살아있다.

언젠가는 우리 집 달력의 365일 매일이 그분께서 우리를 surprise 해주신 일로 채워지리라.

아니,

이미 주셨던 축복이 생각나리라.

7월, 내 생일마다 친정으로 오던 딸네.
몇 년 전부터, 함께 여행 가는 것으로 바꾸었다.
어느 여름, 강원도 한 풀빌라에서 만나기로 했다.
몇 주 전부터 시작된 장마가 그치지 않았다.
만나기 전날 밤, 폭우 속에 번개가 동에서도 서에서도 번쩍번쩍.
다들 시간도 따로 낸 상태고 2박 예약한 숙박지도 이젠 취소가 안된다.
아침에도 여전히 장대비가 쏟아졌다.
에쿠...
안되면 숙소에서 종일 머물며 얼굴이나 봐야겠군.
짐을 차에 싣을 때쯤 줄기가 약해지더니
떠날 때쯤 비가 그쳤다.
강원도로 가다 보니 그곳에서는 비는커녕 햇빛이 났다.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양 떼 목장.
목장 투어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이런 청명한 날씨는 2대가 덕을 쌓아야 돼요."
이틀 동안 아침마다 햇살이 눈부셨다.
떠나온 우리 동네는 그동안 역사적인 물난리가 났다.
전국에서 걱정하는 지인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나는 별빛이 빛나는 잔디발 위에서 사위가 꾸어주는 바비큐를 먹으며 지인들의 걱정 어린 전화들을 받았다.
2박 3일 함께 했던 딸네와 헤어져 귀가하는 길.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귀가하여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창 밖에 장대비가 시작한다.
밤새도록 번쩍번쩍 번개가 치며 거센 비가 내렸다...


여기는 장마 중이나, 화창한 날씨의 그곳 수영장에서 조카들과 수영하느라 까맣게 탄 아들의 목덜미가 새삼스럽다.
물론 이 일도 나의 달력에 등극.
해마다 이 일로 즐거워해야지.

하는 일마다 꼬이는 그런 날.
이런 기적을 베푸실수 있는 그분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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