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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Dec 22. 2024

1950년 성탄의 기적

은총의 항해

    
기적: 신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일


"사람은 빵, 집, 사랑, 행복 없이 살 수 있지만 신비 없이는 살 수 없다"
 (프랑스 작가 레옹 블로어)


재작년 겨울,

연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
춥다. 너무 춥다.
동네 볼일 보러 나갔다가 포기하고 추워 도중 돌아왔다.
문득 어릴 때 50~60년대 겨울이 생각났다.
동네 하수도 꽁꽁 언 개울가에서 썰매를 탔다.
가게의 사이다병이 얼어 터진다.
마루의 씻어둔 걸레가 밤새 꽁꽁 얼은 동태가 되었다.
고무신이나 헝겊신.(부츠가 뭔데?)
면옷이나 털 스웨터.(구스 패딩이 뭔데?)
그때는 정말 추웠다.

얼마 전, 그러나 예전 1950년, 영하 30도의 추운 겨울에 일어난 기적!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
파죽지세로 북진하던 연합군.
그러나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패하고 연합군은 퇴각하게 된다.
그들은 바닷길인 흥남부두를 통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11일 밤, 흥남에 집결하여 그곳을 철수하려는 연합군들에게 생각지 않은 미션이 생겼는데 그것은 피난민들 운송.
공산치하로부터 같이 탈출하려는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들이 모인 것이다.
지상 최대의 해상 철수작전이 시행되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이 배는 사실 전쟁하는 군함이 아니다.
제트기 연료 기름을 실어 나르는 민간 화물선.
대부분의 군대는 이미 서둘러 철수했고, 도시는 3km까지 다가온 적의 포화로 화염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 배는 해안에 남아있던 14000명의 피난민 모두가 승선할 때까지 포화가 쏟아지는 항구에 마지막까지 정박해 있었다.


선장인 레너드 하루는 "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출하라"라고 명령했다.

12월 22일 밤 9시 30분, 승무원들이 화물운반용 그물망을 줄사다리용으로 배 측면으로 내리자 피난민들은 배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이것을 '높고 푸른 사다리'라 했다.)
23일 11시 10분까지 13시간 40분에 걸쳐 14000명의 피난민이 탔다.
사람 타는 공간이 아닌 짐 싣는 지하 5층 화물칸부터 '정어리처럼' 켜켜로 실렸다.
그러나 얼마나 힘든 아니 불가능한 상황인가?
그 배의 사람이 타는 공간은 고작 37명.
화물 적재용이지 사람 수송용이 아닌 그 배에
화물이 된 사람들은 화물 엘리베이터로 내려보내져  화물칸에 켜켜 쌓였다.
여분의 음식은 물론 물도 전기도 여분의 화장실도 없었다.
이 삼 일간 물 한 모금 먹지 못 한 사람들.
멀미로 인한 토사물과 인분 등이 여기저기 밟혔다.


도대체 이건 무모한 시도다.
미국 승무원만 타는 그 배에는 의사는 물론 한국말을 통역할 사람도 없었다.


'지옥보다 무서운' 영하 37도의 추위.
지하에 적재함이 가득 차 갑판 위에까지 올라가 있는 피난민들, 밤새 얼어 죽기가 십상이었다.

또한 스파이의 위험.
그 당시 북한 민간인은 적국의 국민이다.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구출작전은 위험을 감수한 것이었다.

폭등의 위험.
헛소문들이 떠돌았다. 원자폭탄으로 죽일 거란다, 배 어딘가에 사체가 있단다...

화재의 위험성도 있다.
연료 기름 화물선이다. 배의 밑창에 300톤의 제트연료가 실려있다.
잘못하면 사상 최악의 해상 폭발이 일어날 판이다.

폭격 위험도 있었다.
그들이 승선하는 동안에도 바로 옆 배는 벌건 화염에 싸여있고 아군의 전함이 적을 향해 쏘는 포탄으로 메러디스호의 갑판도 심하게 흔들렸다.
잘못하면 아군의 포에 폭격될 판이다.

배 밑 바다에 포진한 기뢰들.
지나갈 바닷길에는 적군이 매설한 모든 종류의 천 개가 넘는 기뢰가 널려있다.
배가 지나가면서 언제 그 하나를 만나 펑 터질지 모른다.
이 배는 기뢰탐지기도 없다.
얼마 전 아군 소형선 3대가 기뢰를 만나 허무하게 침 물 되었다.

공해상에 나가면 적에 들키지 않게 무선장치도 꺼야 한다.

이 작은 배에 켜켜로 실린 이 많은 사람들. 공포로 한꺼번에 쏠리기라도 하면 이 배는 균형을 잃고 바로 침몰한다.
그밖에 전염병, 얼은 갑판에서 실족의 위험. 등등...

그러나
그러나
그 배는 그 줄줄이 이은 파선의 리스크에도 12월 24일 성탄 이브날 부산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기적의 항해였다.

그런데 막상 도착했던 부산은 이미 피난민으로 포화상태.
거제도로 가도록 명령받는다.
마치
크리스마스이브 날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묵을 방을 구할 때, "빈 방 없어요"처럼.

그 배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거제도에 마침내 도착한 날은 바로 성탄절.
그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항해 중에도 인명 피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5명의 아기가 태어나
14000명이 14005명이 되었다.
그 아이들은 '김치 1~김치 5'의 아명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위해 기도했으리라.
작가 공지영 소설 <수도원 기행 2>에 보면 로마 샌안토니오 수녀원이야기가 나온다.

그곳에는 평생 방 밖을 나오지 않고 봉인된 삶을 사는 한 수녀님이 계신다.
1950년 초,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먼 동양의 변두리 나라,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전해 듣는다.

폐쇄된 그녀의 기도실에서 평생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 응답은?

우리나라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수녀님을 비롯한 많은 기도의 응답으로 한국전쟁 중에도 인간 천사들을 처처에 보내셨다.


선장 마리너스 레너드.
이 위험한 항해를 결단하고 총지휘를 했다.


'한국의 쉰들러'  통역장교였던 현봉학 박사.
함흥 철수 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피난민 이송을  간곡히 미군에게 부탁했다.


변호사 로버트 머니
빅토리호에 승선했다가 살아남은 선원으로 흥남철수에 대한 많은 자료를 보관하고 역사적 사실들을 세상에 알렸다.

안재철 재미 무역가.
지금이야 특히 영화 <국제시장>으로 흥남철수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 오랫동안 묻혀 있었다.
그런데 안재철 씨는 가톨릭 신자인 부인이 2001년 한 베네딕트 수사, 故 마리너스의 장례식에 가는데 동행했다가  이 놀라운 사건을 알게 된다.
평범한 재미교포로 살던 그는 이 감동적인 사연을 접하면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이 일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의 노력 덕분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왜관에 있는 베네딕트 분도 수도원.

2001년 어느 날,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뉴턴 수도원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편지내용은
'62만 평의 대지에 백 명 가까운 수도자들로 융성했던 이  뉴턴수도원.

그러나 이제는 수도자들의 감소로 폐쇄될 위기니 도와달라는 것.'

그곳 사정을 알아보러 그곳에 도착한 한국수도자들.

그런데 그곳에서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한 수도사.
그는 독신, 순종, 종신서원을 약속하고
병원에 들를 일 외는 바깥출입을 삼갔다.
평생 수도원 입구의 성물 판매점을 관리했다.
그런데 그는 바로 1950년 기적의 배, 메러디스 호의 레너드라로 선장이셨다.
아니, 마리너스 수사였다.

-마리너스 수사님-


그곳을 돕기로  왜관 신부님이 서명한 바로 이틀 후 마리너스 수사님은 87세로 소천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뉴턴 수도원에서 완성되었다.
한국전쟁 중 한 미국인이 베푼 은혜를 50년의 세월을 거쳐 한국인들이 보답하게 된 것이다.
뉴턴 수도원은 그렇게 다시 살아났다.

생전 그는 그 '기적의 항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러면
그 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저에게 옵니다."
(아멘, 우리 인생도 그러리라...)

한국동란 때 그 많은 피난민을 구한 배의 선장이 어떻게 수도원의 수사가 되셨는지?
드라마틱한 그의 변신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그는 라파엘 시몬 신부님의 세 문장의 글을 인용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모험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대림절을 지나 성탄절이 다가온다.
기적으로 가득한 이 땅에
가장 큰 기적으로 오신 아기예수님.
Merry Christmas!
 


참조도서
기적의 배 (빌 길버트)
수도원기행 2  (공지영)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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