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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변호사 Feb 09. 2021

누가 감히 그대를 낙오자라 부를 것인가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이유

나는 이미 TV 오락물의 하나로 자리 잡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극찬을 하며 권하더라도 아직까지 이를 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수도 있겠다. 이쯤 하면 조금은 독특하고 별난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어떤 사람들은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나를 잘났다고 하거나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다수의 경연자들이 짧은 시간 내에 본인이 그동안 자신의 실력을 선보인 후 평가자들의 혹독한 심사평을 받고 눈물을 보이거나 쓸쓸히 무대 뒤로 퇴장하고 만다. 그들이 그동안 흘렸을 눈물과 땀에 대해서 얘기하기보다는 오로지 경연자가 보여준 찰나의 순간에 대해서만 계량하고 점수를 매긴다. 가끔은 그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동정에 가깝다.


평가가 공정한가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즐기는 오락 프로그램마저도 한 사람이 몇몇의 평가자들에 의해 폄하하고 난도질당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하는 얘기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걸었을 것이다. 혹평을 당하며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그 모멸스러운 순간을 홀로 견뎠을 것이다. 평가자들이 눈물까지 흘리며 다른 경연자들을 칭찬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자기나 똑바로 하지”라고 한마디를 꼭 하게 된다. 주변에서는 여지없이 핀잔의 시선이 날아드는 건 익숙하다.


변호사라고 이런 일을 안 겪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매 순간 겪는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을 웬만하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다. 그 직업을 알게 되는 순간 열에 아홉은 국내 유수의 대형 로펌 출신 변호사들을 얘기하거나 본인이 안다는 판사나 검사의 이름으로 한마디를 거든다. 마치 내가 그 지인의 부하직원이라도 되는 양, 나를 줄세우고 평가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거론하는 이름들 중에는 나와 같이 근무했거나 현재까지도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그분들과의 친분을 얘기하지 않는다. 성격이 그리 둥글지 못한 나에게는 참으로 고역이지만 그분들과의 친분에 관한 얘기를 단지 듣는 척만 한다. 물론 전혀 듣지 않는다. 그분들은 자신의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친분관계가 회자되는 것이 결례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출내기 변호사였을 때 나 역시 경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그들이 소위 “살 수 있는”(나는 나를 판 적이 없다) 수많은 변호사들 중 하나였을 것이고, 그 찰나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평가당하고 있었을 것이다.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혼자 잘났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나를 폄하할 만큼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 나의 시간에 충실했고 내 노력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나 역시 그때만큼은 20대의 내 젊음과 인생을 걸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푸른 청춘들은 나와 같이 경연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매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눈물과 땀으로 밤낮을 지새울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못할 망정 그들의 노력을 단 한번의 경연으로 혹평할 수 있는가? 그들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누가 감히 탈락이라고 할 것인가? 어느 누구도 그럴 자격이 없다. 적어도 우리는 아니다.


오늘도 보석처럼 빛나는 젊은 그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대들의 땀과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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