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학 번역가를 꿈꾸는 불문과 출신 일반인의 번역 아틀리에 경험담
201x년 겨울, 어느 대학교의 불어불문학과에서 주관한 '번역 아틀리에'는 서울 동교동의 한적한 카페에서, 총 여섯 번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고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프랑스 문학 번역이란 무엇인지를 아주 살짝 맛보게 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번역 아틀리에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번역가 장소미 선생님과 함께했다.
첫 만남에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참여하게 된 동기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 후 우리의 손에는 한 권의 원서가 주어졌다. 국내에서는 소설 「첫 문장 못 쓰는 남자」로 인기를 끈 벨기에 작가 베르나르 키리니(Bernard Quiriny)의 신작 「Une collection très particulière」였다. 굳이 발음하자면 '윈 꼴렉시옹 트헤 파흐티뀔리에흐' 정도가 되겠다. 국내에 소개되지도, 번역되지도 않은 이 책은 장소미 선생님이 역자를 담당한 책이자 아틀리에가 끝나는 시기와 비슷하게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키리니의 새 소설이 아틀리에 교재로 선정된 이유다. 오직 로마자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 내용은 물론 제목조차도 우리말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번역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또한 우리 나름대로 번역한 결과물을 갓 제본된 전문가의 번역본과 비교해 볼 수도 있으니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을 거다.
책은 두 파트로 나눠지는데, 그중 우리는 총 6장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시대」라는 파트를 번역하기로 했다.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의 주도로 빠르고 간단하게 ‘해석’을 한 후 다음 만남까지 각자 ‘번역’을 해서 제출하는 것이 수업 방식이었다. 해석과 번역의 차이, 선생님이 강조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해석은 그저 문장의 뜻을 풀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번역이란 낯선 언어로 된 문장을 우리말로 다시 쓰는 작업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매끄럽고 우리말다운” 문장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 간단하고도 까다로운 조건 하나가 6주 동안 악랄하게 우리를 괴롭힌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사전에서 단어를 찾은 후 문법을 파악하면 대략적인 문장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명사와 수동태, 수많은 관계대명사로 이루어진 프랑스어 문장을 어떻게 한국어로 정리하면 좋을지는 한참의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한다. 첫 수업 후 혼자서 제1 장 ‘사후 세계(처음에는 ’무덤 너머‘라고 직역했다.)’를 번역할 때, 한 페이지만을 쓰는 데 자그마치 다섯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번역이라는 행위에 적응이 되고 저마다의 요령이 생겼기 때문에 쓰는 속도가 빨라지기는 했으나 분명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6주라는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만남이 있던 날, 드디어 지금까지의, '무려 a4용지 25장 분량의'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장소미 선생님이 해석상의 문제나 부자연스러운 우리말을 고쳐 줬음은 물론이고 우리 역시 서로의 것을 돌려 읽으며 간단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정말 신기한 사실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설명을 들었던 다섯 명이 쓴 문장들이 말 그대로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첫 수업에서, 선생님은 번역 또한 창작 행위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어휘의 선택, 문장 구조 등이 전부 다른 다섯 개의 글을 보니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적받은 사항 중 예상 밖이었던 것은 ‘그’라는 지시 대명사를 남발한다는 것, 그리고 그 역시 번역체의 일부이기에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평소 번역체에서 느껴지는 부자연스러움에 얼마나 무감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특별한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키리니의 새 책 「Une collection très particulière 」가 한국에서 「아주 특별한 컬렉션」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는 과정을 책임지는 문학동네 편집자님을 만나는 자리였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출판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외국 도서가 어떠한 기준으로 선정되는지, 누구에게 번역을 맡기는지, 얼마 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이 진행되는지 등을 물었다. 편집자 또는 번역가에 관심이 있는 우리로서는 더없이 유용한 시간이었다.
이 만남을 마지막으로 번역 아틀리에가 끝났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우선 번역이라는 작업의 구체적인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차마 이 글에 담을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번역가의 애로 사항 역시 오프 더 레코드로 남을 것이고. 6주 동안 프랑스어 사전과 원서를 달고 살았으니 얼마쯤은 프랑스어 실력이 향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장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누군가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에 관심 없기 때문에 이 수업이 흥미롭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번역은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우리말을 쓰는 훈련'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해당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기본이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뒤엉켜 떠다니는 낱말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우리말 문장을 만드는 것은 훈련 없이는 힘들 것이다.
'아주 특별한 컬렉션'을 다룬 것치고는 아주 사소하게밖에 느껴 보지 못한 첫 번역의 맛. 그렇지만 달콤했다. 이상, 참가 학생들 중 문장을 가장 매끄럽고 리듬감이 느껴지도록 작성했다는 칭찬을 들은 한 명의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