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 22. 토막글
예전에 잠시 스펙으로 봉사단체 경험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교육봉사를 하는 한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했던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기획 분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봉사 수혜자들을 만나 직접적인 봉사를 하는 것보다도 내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기획업무를 하면서 봉사 경험도 쌓을 수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있다. 비록 기획한 여러 일들이 단체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제로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기업이 바라본 사회 환원'이라는 주제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일반 대중들은 기업이 뭔가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창립자의 의지에 따라 사회 환원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러한 이미지가 널리 홍보되기를 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해당 단체에서 간접적으로 접했던 기업의 실무진 차원에서의 사회 환원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선, 그때 내가 활동하던 비영리단체에 후원하던 기업은 후원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또 기업들이 뭔가 큰 비전이 있어서 후원을 한다기보다는, (해당 비영리단체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정도는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비영리단체에 후원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끊으면 여러가지 세제 혜택 등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이 연간 비용을 수립할 때 일정액을 기부 명목으로 할당해 놓고 소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적당한 사용처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연말에 급하게 기부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이런 것들이 막상 실제로 기부를 한 단체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 기업의 사회환원에 대해 막연하게 환상을 품고 있던 내게는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활동했던 단체의 예를 들자면, 모 자산운용사가 큰 금액의 후원을 해서 관련 기획 업무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자산운용사가 아동교육 관련 비영리 단체에 후원하는 데에는 기업활동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해당 자산운용사는 심지어 부동산 상품에 주로 투자를 하는 리츠 회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기업이 어쩌다가 내가 활동하던 단체에 기부를 하게 되었는지, 그 사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 ESG의 개념을 막 배웠던 나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업이 가장 잘 하는 것'으로 사회환원 활동을 할 수 있다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사회 환원 활동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그 기업이 바로 그 일을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환원 활동은 기업이 기반을 둔 산업 분야에 투자를 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사회 환원 활동이 그 기업의 이윤 창출로도 이어지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요컨대 그 사업이 지속가능하게 하는 토양을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면 단순한 사회 환원 활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 창출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업으로서도 더욱 사회환원 활동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고, 긍정적인 선순환의 사이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나름 기획 업무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기업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의미 있는 기부활동이 되도록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생각해낸 해결책은 간단하다. 교육 취약지역에 교육시설을 세우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소와 용역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리츠 회사는 '부동산'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은 리츠 회사가 취급하는 바로 그 부동산의 가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교육은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모이면 부동산 값은 오른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학업 지원 센터 등을 세워서 그곳으로 아이들이 모이게 할 수 있다면 그 지역에 투자한 부동산의 값이 장기적으로 오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하다 못해 그 센터에 방문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 유동인구가 많아져 당장 그 주변의 상권이라도 조금 활기를 되찾게 되지 않을까?
이것 말고도 해당 기업이 금융기업인 만큼 취약계층에 경제교육 컨텐츠를 제공하는 등의 기획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교육 컨텐츠를 단순히 제공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컨텐츠를 큰 돈을 들여 제작하는 것과 그 컨텐츠가 유용하게 소비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 컨텐츠 제작에는 많이 회의적인 편이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던 경험은 짧았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에 ESG 경영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생소하다는 걸 느꼈다. 그러나 분명히 기업의 ESG 경영의 중요성은 더더욱 강조될 것이고, 언젠가 기업을 고객으로 해서, 그 기업의 사업분야에 연관된 사회환원 활동 모델을 제시하고, 사회환원 활동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투자로 만드는, 그런 사업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것도 나름대로 수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요컨대 내가 엿본 '기업의 사회 환원 활동'의 편린은, '버려지는 돈'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것이라면, 누군가가 이걸 더 가치있게 활용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 역시 가치있는 비영리 사업 모델이 되지 않을까?
기부 활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겠지만, 단편적이고 일회성인 기부보다는 지역사회의 체질을 바꾸는, 그래서 그 기업이 토대를 둔 산업이 더욱 발전할 동력을 제공하는, 그런 근원에 접근하는 사회 환원 활동이 아무래도 더 좋지 않을까? 문제는 항상 '그렇게 하면 너무 좋겠지만, 누가 맡아서 할 건데?'에 있다. '책임은 누가 질 건데?', '그냥 하던 대로 하던 게 편하지 않나?'를 이겨내지 못하면 기부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쎄, 그래도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도전해보고 싶어 하는, 기획의 가치를 알아보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