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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브랜드 Aug 16. 2021

아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잠수종과 나비 그리고 엄마


아들아, 

엄마가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는데

그 이야기가 실화라고 하는구나.

주인공의 사연을 들어서 그랬을까?

글자 하나도 그냥 넘길 수 없어 느린 속도로 읽다 보니 어느덧 나는 

외할머니가 아프셨을 때의 엄마로 가 있더구나.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은 장 도미니크 보비가 쓴 책이야.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 잡지인 Elle(엘르)의 편집장으로 그는 늘 유명한 셀럽과 디자이너들 그리고 광고주들과 함께 늘 일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나도 부러워할 만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삶도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44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는 로크드 인 신드롬(감금 증후군))이라는 병명을 받은 환자가 돼. 

*'로크드 인 신드롬(locked-in syndrome)'이란?

의식은 있지만 전신마비로 인하여 외부 자극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왼쪽 눈만큼은 깜빡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래서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했고 사고 후 15개월 동안 20만 번의 깜빡임으로 완성한 책이 바로 <잠수종과 나비>이란다.


아들아, 만약 엄마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들과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들 때문에 그 어떤 생각과 행동도 못할 것 같아.


그런데 작가는 평생 글을 써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의식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존재로서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나 자신 이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더구나.


아들아, 책  제목이 뭔지 기억나지?

엄마는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잠수종? 그때 들었던 그것?? 만약 그것이 맞는다면 나비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라고 궁금증이 생기더라. 너는 어때, 뭐가 떠오르니??


잠수종과 나비는 크기로 보나 무게로 보나 서로 상대적 개념이지 공통적이거나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들이잖니. 그런데 작가는 어떤 의도로 책 제목을 <잠수종과 나비>로 했을까?


엄마는 잠수종이란 단어를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해양 구조를 하기 위해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야만 하는 잠수 부들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런데 짧지만 강렬한 문장들에서 작가가 왜 자신을 잠수종을 입은 사람, 그리고 연약한 나비로 표현했는지를 알겠더라고.


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는데 몸은 자신의 의식을 감금한 상태! 이것을 잠수종이라 했고, 의식은 살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나비로 투영했던 게 아닐까?


- 잠수종이 한결 덜 갑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면 네 정신은 비로소 나비처럼 나들이길에 나선다.


- 모자라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나만 제외하고. 나는 거기에 없고 다른 곳에 있었다.


- 열쇠로 가득 찬 세상에 내 잠수종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나의 자유를 되찾아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나는 내 운명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 지체 마비자가 아닌 달리기 선수가 화자로 등장하는 대하소설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다.


어때? 너도 작가인 장 도미니크 보비가 비록 몸은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내면의 독백을 읽어보니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보이지?


엄마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한 분이 생각났어. 그게 누군지 아니? 그건 바로 엄마의 엄마이자 

너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길러주신 외할머니야! 


네가 고 1 때였나? 외할머니를 모시고 온 게.

지금 돌이켜 보면 외할머니의 병을 너무 늦게 알고 대처한 것이 무척 후회되고 처음 마음먹었던 것처럼 엄마의 엄마를 간호하지 못한 아쉬움이 불편함으로 남아있단다.


외할머니는 그 아픔과 두려움을 직접 느끼고 있는 당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프다는 자식들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분이셨기에 태산처럼 그냥 그대로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이렇게 큰 병에 걸렸을 줄이야...


-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만성 신부전증 환자

- 신장 기능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

-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 수술만 네 번

- 인공 혈관 삽입, 뚫기 시술은 수 없이

- 뇌 수두증 수술

- 주 3회 4시간씩 혈액 투석


이 모든 것들 때문에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고 계단에서 구르고 팔이 부러지고 이가 깨지고 응급실에 실려가고 머리가 아파도 거동이 불편한 당신의 아버지를 모셨고 남편을 챙겼으며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으셨던 나의 엄마.


처음엔 외할머니도 나도, 가족들도 모두 병원에서 하라고 하는 대로 약 잘 먹고, 운동하고, 식단 조절을 하기만 하면 아니 좀 더 많이 애쓰면 나아질 줄 알았거든? 그런데 우리 모두의 바람과는 달리 외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더라고.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외할머니 역시 작가처럼 정신은 멀 정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기저귀를 차야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는 거였어. 한 번씩 실수할 때마다  '어? 내가 왜 이렇게 됐지?'라는 자괴감이 들어 힘들다는 말씀도 하셨고.


그런데 말이야, 아들아!

정작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할머니의 상황이 안 좋아지는 것도, 형제들 간의 서운함도 아니었단다. 그건 바로 첫 다짐처럼 온전히 케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볼 때였단다.


외할머니를 고귀한 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딸로서, 환자로서, 간호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만 하고 있는 나 자신 말이야.


외할머니는 늘 말씀하셨어. 배움이 짧은 탓에 당신의 생각을 바르게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외할머니는 아픔을 느낄 때마다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자식들 보기에 미안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셨지만 극한 아픔의 공포가 몰려왔을 땐 "아이고, 나 죽는다! "를 외쳤던 그녀! 


점점 몸이 굳어져 가는 걸 느끼셨을 텐데, 그땐 어떤 기분과 감정이 드셨을까? 수많은 약들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무셨던 그때도 내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비록 몸은 불편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내 엄마고, 너의 외할머니이며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분이시잖아. 그런데 그땐 이 엄마가 그걸 보지 못했어. 아니 생각도 못 했어.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아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죄송할 뿐이다. 


아들아,

앞으로 우리도 이렇게 생각하지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을 겪게 될 거야. 그것이 너와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하고 부정하기 위해 회피할 때도 있을 것이며 두려움 때문에 벌벌 떨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 할지라도 의식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존재로서의 나'라는 인식을 놓지 말자. 장 도미니크 보비가 했던 것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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