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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훈 Dec 12. 2019

책만 보면 집중력이 금방 떨어져요

- 독서가 어려운 첫 번째 이유 '언어의 밀도' 

 다음 대화를 보시죠. 

 나 : 엄마, 오늘 어디 나가?

 엄마 : 엉, 오늘 엄마 우쿨렐레 치는 날이야. 넌 오늘 몇 시쯤 와?

 나 : 나? 오늘 끝나면…. 한 11시?

 엄마 : 어? 늦네?

 나 : 아, 밴드 연습시간 옮겼어, 수요일로.

 엄마 : 그래? 연습실을 옮긴 거야?

 나 : 아니, 멤버 하나가 옮기고 싶다 그래서.

 엄마 : 엉… 알았어~

 나 : 엉~ 나 나갔다 와요~

우리는 생각보다 일상 생활에서 한글을 다양하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쓰고 보니 참 민망합니다만, 오늘 아침 집을 나서기 전에 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입니다. 어떠신가요? 모자간에 참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화입니다.(저는 어머니께 보통은 존댓말을 쓰지 않습니다. 불편하신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위의 짧은 대화에서 어머니와 저는 단어를 몇 개나 사용했을까요? 

 

 저 정도 수준의 단어를 어느 정도 나이에 배우게 될까요? 저는 지금 33살인데, 20년 전의 대화와 비교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밴드, 연습실 정도의 단어만 학원 내지는 놀이터로 바꾸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수는 2000~3000개 정도라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2018년에 국어 기초 어휘 선정을 위해 진행한 연구에서 수집했던 단어 수가 45억개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상에서는 한국어 단어를 극히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도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 수는 비슷하고,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1000개 정도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평상시에 한글 단어를 생각보다는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초등학교에서는 공식적으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이걸로 나이를 추측하지 말아주세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6년동안 영어를 배웠습니다. 물론 외국인을 만나면 도망가거나 모 광고에서처럼 정수리에서 물이 나왔죠. 한번은 그냥 ‘팔로우 미’ 하고 데려다 줘서 국위선양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튼 영어에 대해서는, 6년이나 배웠는데도 외국인 만나면 말이 안 나오니, 학교에서 영어를 계속 배우는 것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런데 국어는 어떻습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할 정도가 되면 사실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2000~3000개의 단어를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언어 생활의 기본인 말하기, 듣기, 쓰기가 무리 없이 가능한 수준은 됐습니다.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도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국어를 계속 배운단 말입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이 부분이 참 불만이었습니다. 성적도 잘 안 나오고 시험을 보면 골치가 아픈 국어를 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배우느냔 말이죠. 저는 이미 한국어를 다 할 줄 아는데 말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졸업했는데, 독서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답은 바로 책에 적히는 언어에 있었습니다. 책에 적히는 언어는 일상 언어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쓰이는 문자는 한글로 일상 언어와 같지만, 일상 언어와 책의 언어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언어의 밀도’에서 옵니다. 


 일상 언어는 보통 구어, 즉 말로 표현이 됩니다. 말은 한번 밖으로 꺼내면 저장할 수 없지요. 그래서 사용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일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됩니다. 친밀해지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고, 업무를 보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고,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사용이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용도를 크게 훼손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용법이 좀 틀리거나 서툴러도 듣는 사람이 알아서 이해합니다. 


 정 이해가 안 되면 질문을 하면 됩니다. 나는 이러이러하게 이해했는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냐고 말이지요. 이것이 구어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합니다. ‘속도감’이지요. 말은 서로 빠르게 주고 받는 방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해도를 서로 높여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의 언어는 문어, 즉 글로 표현이 됩니다. 글을 쓰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어려움은 한번 적으면 계속 남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책으로 출간될 경우, 내 주변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말과 달리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내 흔적을 다 지우지 않는 이상에는 사실상 영원히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매우 신중히 골라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글을 한번 잘못 쓰면 나의 실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남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문장을 하나 쓰고 지웠다가 또 고민하고, 단어 하나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생각하고, 이렇게 바꿨다가 저렇게 바꿨다가, 이 표현이 더 좋을까 저 표현이 더 좋을까, 더 적합한 표현은 없을까, 이렇게 쓰면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할까, 누군가는 싫어하지나 않을까, 요즘은 이런 표현을 안 쓰나 등등 매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 종일 작업을 했는데 A4용지 반 페이지나 채울까 말까 한 분량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고민의 결과로 책이 한 권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책의 언어는 고민과 시간이 ‘축적된 언어’인 것입니다. 밀도가 높은 언어의 예시를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일상언어의 한글과 책 속의 한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권리와 형평, 법과 정의 등의 원인과 근본 구조를 모르는 자는 관습과 선례를 행위 법칙으로 사용하여, 관습에 따라 처벌받는 행동은 부정한 것으로, 처벌받지 않은 선례가 있는 행동은 정당한 것으로 보게 한다.

(...중략...)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부모 또는 교사의 지도에만 의존하여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구분하는 것과 같으나, 아이들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규칙을 항상 따르는 것과 달리, 성인들은 나이가 들어 강해지고 완고해져 이성에 관습, 관습에 이성을 견주어 보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해석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같은 규칙을 항상 따르지 않게 된다.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어떠신가요? 단순히 사용한 단어가 어려워서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그것도 (굉장히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위의 저와 어머니의 대화와 토마스 홉스의 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홉스의 글에서는 '뺄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 언어를 사용할 때, 특별한 전략을 생각하지는 않지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 언어는 특별한 한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감정을 나누고, 정보를 전달하고, 별 의미 없이 관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토마스 홉스의 글은 본인의 책 '리바이어던'의 일부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글은 일상언어와 달리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쓸 때는 전략을 세우고, 필요 없는 말은 덜어냅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적합한 표현을 쓰려고 하지요. 책은 구어인 일상 언어와 달리 순간적이지 않고 되물을 수도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문장이 많으면 독자를 헷갈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잘 짜여진 글은 덜어낼 말이 없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마음을 편히 먹고 대충 읽어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이죠. 이것이 밀도가 높은 글과 아닌 글의 차이입니다.

 

 제가 일상 언어보다 책의 언어가 더 우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사용처가 다를 뿐 두 언어 모두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우리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면 더 이상 국어 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는 점점 책의 언어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일상 언어를 주로 사용하며 삶을 살아가지요. 비유하자면 원래 에스프레소도 마시던 사람이 이제 에스프레소를 거의 끊고 아주 연한 아메리카노만 먹는 것이죠. 연한 커피를 10년 이상 마시며 익숙해진 상태에서 다시 에스프레소를 먹으면 어떨까요? 당연히 적응이 안되고 부담스럽겠죠. 

 

 우리는 시간과 고민이 농축되어 있는 책의 언어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특히 좋은 책일수록 밀도가 더 있습니다. 고전으로 칭송 받는 문학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래서 서점에서 내용이 좋다는 책을 사도 막상 읽으면 잘 읽히지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독서는 독서로 훈련해야 합니다. 왕도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밀도가 높은 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운동을 해서 근육을 불려 놨다가도 운동을 그만두면 다시 풀리게 마련이지요. 근육을 다시 만들려면 운동을 다시 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밀도가 높은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특별한 비책을 알려드리지 못하는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가 베이스 기타를 배울 때의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남자 치고는 손이 작고 손가락이 가늘어서 베이스 기타를 연습할 때 애를 먹었습니다. 베이스는 일반 기타에 비해 크기가 크고 줄이 두껍기 때문이었죠. 손가락에 힘이 없어 연습을 조금만 하면 금새 손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저를 가르쳐주던 베이스 기타 선생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손이 작고 힘이 없어서 베이스를 치기가 힘든데, 손 힘을 기를 수 있는 좋은 운동 같은 것이 있느냐고 말이죠. 

 

 저 나름대로는 꾀를 부리려고 했던 질문입니다. 베이스를 치기가 힘드니 베이스를 안 치고 다른 방법으로 손 힘을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러나 베이스 선생님의 대답은 제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이스를 칠 때 필요한 근육은 베이스를 쳐야 늘어요.”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후로 힘들었지만 군소리 없이 베이스 연습을 했고, 지금까지 10년 정도 베이스를 즐겁게 연주하고 있습니다.

 

 책의 언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견뎌야 합니다. 제가 손이 아파도 베이스를 계속 쳤던 것처럼요. 독서를 하기가 싫으시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겠습니다만, 어쨌든 책을 읽고 싶으시고 독서를 잘 하고 싶으시다면 다른 방식의 연습 방법을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신체적인 불리함(손가락이 얇고 손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스를 어느 정도는 칠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계속 베이스를 쳤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꾸준히 책을 읽으시다 보면 예전에는 힘들었던 것들이 점차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드디어 독서가 왜 힘든 일인지 한 꺼풀 벗긴 것 같아서 속이 시원하네요. 제가 어머니께 독서에 대한 설명을 드렸었는데, 독서가 사실은 쉽지 않다는 이 이야기를 설득시키는 데에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언어의 밀도가 다르다는 말 자체가 워낙 낯선 말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독서가 어려운 것이니, 훈련을 하실 분들은 마음을 편히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으시더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어려운 게 하루 이틀 연습해서 된다면 그게 어려운 게 아니었거나 사실은 내가 그 분야의 천재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마음을 느긋하게 드시고 천천히 해나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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