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이라는 어원을 찾아보면 첫째,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둘째,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의 뜻에 더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뜻이 서로 통하고 오해가 없는 상태’가 바로 소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통’ 하기 위해 읽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면 제일 먼저 책을 즐겨 읽어야 합니다. 책을 즐겨 읽으려면 먼저 책과 친해지고 책과 잘 놀 줄 알아야 합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습니다. 유명 저자의 책이거나 책의 광고 문구가 마음에 들어서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자신의 마음이 끌려 손이 가는 책을 고르면 됩니다. 책의 첫인상에 끌렸다면 그 책을 읽는 동안 설렘과 만족감이 동시에 따라올 것입니다.
읽을 수 있을 때, 읽고 싶을 때 마음껏 많이 읽어 두어야 합니다. 젊었을 때 부지런히 읽고 많은 지식을 쌓아두어야 합니다. 늙으면 책 읽는 것도 힘이 듭니다.
책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 중에 제일 좋은 방법을 책을 통한 독서 모임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직장 조직처럼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경쟁의 대상이 아니어서 더욱 편안한 관계 맺음이 가능합니다.
그들과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유명 저자의 특강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고, 독서세미나 혹은 독서 감상문 대회 등 각종 행사를 공유하고 참여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저도 인스타에서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색다른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어 매우 만족합니다. 유명한 저자를 줌 강의로 만나기도 하고, 저자와 직접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갖기도 합니다. 독서 모임 회원들과 함께 주제별 독서도 하고, 글쓰기도 하며, 공동 저서를 집필하기도 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끼리 서로 응원하고 칭찬해 주는 문화가 매우 좋습니다. 이는 경쟁 사회에서 느낄 수 없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자체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이어서 기본적으로 성향이 비슷합니다. 큰일, 작은 일 어떤 일이든 성취가 있을 때 회원들끼리 단체 모임방에서 무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심 없이 보내주는 응원의 메시지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합니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 책에 ‘소통’에 관한 주제의 글이 있습니다.
박웅현 저자는 우리가 소통이 되지 않는 3가지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첫째,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셋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이렇게 3가지로 간결하게 정리해 놨습니다. 그러면 소통을 잘하기 위한 자세는 무엇인가? 그는 바로 소통을 잘하는 자세를 말해주는데 “다름을 인정하자, 문맥을 생각하자, 생각을 디자인하자.”라고 말합니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배려심과 넓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핵심의 말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독서를 많이 해야 가능합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 사고법이 잘 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입니다.
법륜스님의 <엄마 수업>이라는 책에서 엄마가 아이들을 야단칠 때는 아이들을 무작정 야단치지 말고, 나 자신이 아이였을 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생각해 보고 야단을 치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모든 엄마들이 자녀가 1등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엄마 본인은 정말 매번 1등만 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엄마 본인도 못 이룬 일을 왜 자녀에게 강요합니까?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본질은 자녀에 대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소통은 서로 대화가 오고 가야 이뤄집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 주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을 가지고 같은 말이어도 문맥상 그 말을 이해해 줘야 소통이 됩니다. 소통에서는 특히 남자분들이 여자들보다 약합니다. 남자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술 먹는데 몇 단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잘 사냐?, 미친놈, 먹자. 마셔.” 이 정도의 단어만 있어도 술자리에서 대화가 됩니다. 하지만 여자들의 모임에서의 대화 단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여자들의 중의적인 단어를 잘 해석해 내는 남자는 천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도 여자의 중의적이고 숨겨져 있는 뜻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습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말에 담긴 의미가 달라집니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논쟁하는 법을 익혀둬야 합니다. 말다툼이 아닌 서로의 의견을 교류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의견은 이러한데 너의 의견은 그렇구나’라고 인정하는 대화법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훈련이 부족합니다. 유교권 문화에서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어른에게 말대답을 하면 안 되는 문화이다 보니 질문을 하는 대화가 익숙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말하면 되도록 수긍하고 수용해 주는 것이 예의가 되어있어 소통을 위한 논쟁 대화법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렇더라고 우리는 독서를 통해 지혜로운 대화법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해야 합니다.
마음이 통해야 소통이 됩니다. 상대를 움직이는 힘은 공감의 힘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공감 능력을 죽이는 사회 시스템이 많습니다.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완수해 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공감 능력이 없을수록 경쟁에 유리합니다. 반면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 시간을 남을 위해 씁니다. 자칫 남을 돕다가 자기 앞가림을 못해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합니다. 자신을 타인과 연결하고 세계로 확장하는 공감 능력이 없으면 우리는 고립됩니다. 내 것 챙기기에 급급하면 갈수록 마음이 황폐해집니다. 모든 사람과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살게 됩니다. 결국에 남의 불행이 내 행복이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보일 때는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되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짠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것은 당연한 인간의 본성의 마음입니다. 이런 공감 능력이 소통능력입니다. 소통이 필요 없던 시절에는 공감 능력이 불필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공감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글쓰기는 독자와의 소통이며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글은 썼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내 글을 읽은 독자의 반응이 글의 완성입니다. 글을 쓸 때 작가는 독자의 반응을 상상합니다.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할까?’, ‘무엇을 궁금해할까?’, ‘이 이야기를 재미있어할까?’, 등을 생각합니다.
독서도 공감 능력과 소통의 힘을 키워줍니다. 시는 감정의 이입을 키워줍니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삶에 빠져들어 사람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줍니다. 글을 읽을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가 생기고,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줄어듭니다.
인생도 독서도 장거리 경주와 같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책을 읽고 인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독서는 거북이의 걸음처럼 느리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이 어려운 것을 이겨내면 확실한 삶의 해답을 찾아낼 때도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책을 읽는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합니다. 책을 읽고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하겠다는 그 행위가 본질이자 목표입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의 잠재의식에 고이 쌓여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읽어 내려간 책들은 나중에 우리의 삶의 마중물이 되어서 더 창의적으로 발휘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독서는 살기 위해, 쓰기 위해, 또 소통하기 위해 하는 위대한 일입니다. 독서를 통해 좋은 운이 우리에게 다가오면 바로 잡을 수 있는 안목을 더 키워가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당신의 때가 있다는 것을 믿고 꾸준하게 독서에 매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