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 실패기
‘퇴근하니 드러눕고 싶다.. 힘드니깐 내일 하자…’
미루고 미뤘던 매일이 쌓여 13년이 흘렀다. 13년을 되돌아보면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낸 날들이나, 성실하게 ‘기록하기’를 미루다 보니 몇 년 동안은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도 잊은 채 시간이 훌쩍 흘렀다. 첫 조직에서 10년 이상 시간을 보내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한동안 마음에 꽉 차 답답할 무렵 결혼과 임신으로 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으로 잠시 숨을 돌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꿈같은 생각을 품고 출산을 맞이했는데..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바쁘게 지내면서, 아이를 앞에 두고 여러 질문을 솟아나고 있었다.
‘복직해서 또 다니다 보면 곧 40대인데, 이대로 괜찮을까?’
그곳은 내게 첫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징검다리가 되어준 소중한 시작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정(情)은 특별하기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들이밀었지만, 원서 통과도 어려운데 인적성은 정말 넘긴 힘든 벽이었다. 그 벽을 넘긴 첫 회사였고 기세 좋게 면접과 인턴을 마치고 입사하게 된 고마운 첫 조직이다. 내 능력에 비해 많은 기회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도 조금 남는다. 그곳과 올해 찐한 이별을 고했다.
그때의 경험들로 무엇을 배웠지?
난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이별 후 내 젊음이 묻어 있던 시간들을 정리하고 싶은데, 어려웠다. 인생의 1/3을 보낸 곳인데 정리가 안 돼 끙끙대며 기억해내려 했지만, 몇 가지 굵직한 사건들 밖에 기억이… 하아.. 이럴 수가. 기록하지 않은 시간들은 한계가 있고, 대부분 최근에 느꼈던 감정과 일들이 생각날 뿐. 13년 전 현장을 누비며 고객사에 불려 혼이 나기도 했고, 협력사와 끈질기게 줄다리기하며 협상을 하며, 납기와 품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원, 대리 그때의 나를 모르겠다. 내가 알고픈 건 그 시간과 공간에 있던 내 생각들인데 말이다. 뒤늦은 후회는 밀려왔지만, 역시나 살던 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기록에 대한 갈증이 더 꿈틀 되었으나, 어찌 성실히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게 쉬는 일인가? 또 현생에 치이고, 귀찮음에 넘어져 어느덧 아이는 돌이 되었다. ‘엄마’라는 말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니 선배엄마들의 이야기도 들리기 시작했다.
애를 키우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가.
그땐 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다 보니 기억도 잘 안 나고
그래서 잠들기 전에 사진첩을 열어봐.
이때 너무 예뻤네 하고 말이야.
먼 훗날 이 말이 내 이야기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지난 조직생활들이 겹쳐 보였다.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의 하루가 금방 지나가 너와 항상 있다간 할머니 되겠네 라는 가사처럼 정말 애 키우다 금방 할머니 될 것 같은데 이대로 사소한 순간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신생아에서 이유식을 먹고 이제는 유아식을 먹으면서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를 보며 인간의 성장이 이렇게나 빠를 수 있다는 것을 매일 감탄하면서 보내고 있다. 몇 년 전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을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히 틀렸음을 꼬물이 성장을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매일 같은 일상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며 순간들을 수집하니 매일이 달리 보였다. 엄마 젓가락이 신기해 가져다 직접 꾹꾹 찔러보기도 하고, 벽에 있던 악어를 보고 드디어 악어라고 말을 내뱉었던 아침 그렇게 사소한 아름다움 들은 겨우내 소복소복 쌓이는 눈처럼, 어느새 창 밖을 바라보니 저만치 쌓인 쌓여 갔다.
이제는 그 눈들을 잘 치우고 정리하는 기록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니 이제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게 맞는 기록법은 무엇일까?
즐겁고 오래오래 10년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찾던 와중에 ‘10년은 해볼 수 있겠다!’라는 기록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