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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ul 04. 2022

“으악! 떨어진다!”

황세원,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산지니, 2020 책 리뷰

“으악! 떨어진다!”

황세원,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산지니, 2020 책 리뷰




  “제가 언제까지 시험을 거부하고 살 수 있을까요?”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능력주의를 주제로 한 강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답변은 애매모호했다. 명확한 답은 얻지 못한 채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는 다음 주 강의를 시작하면서 질문을 회피했던 점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했어야 할 사람은 나인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할 수 없는 내 삶의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시험만능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의 맹점을 지적해봐야 나 또한 자본주의에 사는 한 사람이었다. 능력과 스펙을 통해 상품성을 인정받아 노동력을 판매해 삶을 영위해야 하는 한 명의 노동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질문을 하며 울먹였던 것은 이십대 후반이 되며 어떤 공포가 점점 구체화 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시험을 거부한 대가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일자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적으로 줄을 세워 좋은 일자리를 분배하는 것이 ‘공정’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겠다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낙오’ 혹은 ‘정신승리’가 될 확률이 더 높았다. 차별받는 일자리는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결국 나도 ‘공기업에 들어가야 한다’,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특정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시각(p.55)”이 나 안에 살아 숨쉰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떤 일자리는 질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p.52)”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말과 글로는 ‘직업이나 소득을 기준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는 것이 이미 사회적 차별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황세원 작가는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에서 “한국 사회의 여러 직장마다 생기는 계약직 채용에서의 잡음”이 “직군에 따라, 채용 형태에 따라 사람을 '차별' 할 수 있다는 인식과 관행 때문(p.100)”이라고 지적한다. 이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할 뿐, 우리는 특정한 경로로 ‘자격’을 얻은 사람은 신분이 높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신분이 낮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이 하기에는 덜 중요하고 하찮은 일에 비정규직을 쓴다”는 그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p.100)”라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내 안의 차별에 대한 공포는 단순히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을 넘어 실재하는 현실이다.


이에 작가는 개인적 차원의 대안과 사회적 차원의 대안을 제시한다. 개인적 차원의 대안은 첫째, ‘자신이 어떤 일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 ‘모든 일에 대한 존중(공부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셋째,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기’이다. 사회적 차원의 대안은 첫째, ‘사회적 대화의 주체로 적극적 역할을 하는 노동조합’, 둘째, ‘일상에서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노동조합’, 셋째, ‘노동 존중을 바탕에 깔고 다양한 노동 형태를 포괄하는 열린 제도’이다. 


(출처 : 유튜브 채널 ‘LAB2050TV’,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ㅣ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ㅣ저자와의 대화」, https://www.youtube.com/watch?v=ZkzoBxVnyhw)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2020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며 조합원 수는 280만5천명에 불과하다. 이에 노동조합 너머의 연대를 꾀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공제회 ‘풀빵’이나 ‘한국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공제회’, ‘라이더 유니온’ 등의 새로운 노동 조직이 그것이다. 기존의 ‘노동조합’이라는 구조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작가가 제시한 사회적 차원의 대안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개인적 차원의 대안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경험을 쌓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의 직업을 존중할 때 우리의 노동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차별받지 않기 위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사회는 활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채 시험, 자격 시험 등의 과정을 통과해서 정규직의 자격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물론 일정한 능력이 있겠지만, 그것이 꼭 조직이 원하는 능력 그대로는 아닌 것이 사실(p.92)”이기도 하다.


 책에서는 자녀 살해 후 자살에 대한 지적도 이어진다. “실직, 질병, 사고 등 이유로 어려움이 닥쳐오는 상황, 말하자면 미끄럼틀 경계가 막 시작되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많(p.229)”았으며 “당장 끼니를 해결 못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태보다는 아직 전세금이나 자가용 등 자산이 남아 있는 경우가 더 많더라는 것(p.229)”이다. 나 또한 몇 달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굶어 죽거나,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은 아니다. 가족의 눈치를 보고, 친구들과 내 삶을 비교하며 자존심 상해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하강’에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다는 사실은 공포를 극대화 시킨다. 안전벨트가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가는 이를 “하강 구간이 지나면 안전하게 지상에 도착하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 긴장을 견딜 수 있고, 짜릿함을 느끼(p.229~230)”기도 하지만 “하강이 계속 이어지다 파괴적 충격,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하강 순간의 짜릿함은커녕 극도의 공포만 느낄 것(p.230)”이라고 표현한다. 


질문을 던지며 울먹였던 나 또한 하강의 짜릿함보다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으리라. '정규직, 큰 조직, 장기근속, 평균 이상 임금'에 속하지 못하는 나의 미래의 모습을 '평범함'이 아닌 '죽음'으로 인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닐 터이다. 성적순으로 상위 몇 퍼센트만 안정적인 삶에 올라 타고, 나머지는 낙오된다는 사실은 전혀 짜릿하지 않다.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좋은 일자리’의 개념을 다시 분명히 하고, 최저선 이하의 노동이 허용되지 않도록 법을 엄밀하게 집행(p.93)”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성적순으로 대기업에 가는 구조 / 저임금 노동은 차별과 무시, 복지의 사각지대에 머문다
성적순이 아닌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직군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유연성과 소득 안정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인 사회안전망과 노동의 처저선 상승이 필수적이다





* 참고자료


1. 유튜브 채널 ‘LAB2050TV’,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ㅣ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ㅣ저자와의 대화」, 

https://www.youtube.com/watch?v=ZkzoBxVnyhw


2. 고용노동부, 「"2020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 자료 발표」, URL : https://www.moel.go.kr/news/enews/report/enewsView.do?news_seq=13127, 검색일 :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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