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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Jan 15. 2024

능력주의가 낳은 외로움

능력주의가 낳은 외로움

김만권, 『외로움의 습격』, 혜다, 2023 #책 리뷰


  ‘성공한 자’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되고, 경험담은 ‘진리의 말씀’이 된다. 과정과 결과를 능력을 통해 입증했음에도 이들이 나눠주는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따라 하지 않는 자는 우매하고 불쌍한 중생일 뿐이다. 명쾌한 답이 있는데 듣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아. 여기 낙오자가 한 명. 경쟁자 하나 줄었다. 성공에 한 발자국 다가간다. 그 사이에도 ‘말씀을 듣고 따라 했더니 저도 성공했어요.’ 신도들의 간증은 이어진다. 능력주의는 그렇게 견고해져만 간다.


  한편에서는 고립과 은둔,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이 증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23년 기준 우울증 진단 환자는 100만 명이 넘었고, 고립‧은둔 청년은 5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취업, 몸무게, 건강, 가정사. 원인이 무엇이든 능력주의의 세계에서는 굴하지 않고 능력을 통해 극복하라는 정언명령이 내려진다. 상황을 설명해도 ‘게으름’이나 ‘무능력’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민을 삼키고, 세상과 단절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작가의 말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이득은 소수가 독점한다.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 라벨링은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임금을 주고 노동자를 사용한다. 막대한 이익은 노동자에게 배분되지 않는다. 그 데이터들이 인터넷에서 수집된 디지털 시민들의 흔적들임에도 데이터의 주인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열심히 해도 제자리’인 상황이 펼쳐진다. 어느 쪽도 능력주의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이라는 자책 혹은 사회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능력주의가 온전히 개인의 능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나 자산, 지능 등에 의해 편차가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아니할 수 없다.


  책에서는 외로움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경청’과 기초자산(생애 주기 자본금), 기본소득(인생 위기‧전환 대응 소득), 디지털 시민권을 제시한다. 정책 제안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상력이 현실 세계에 적용됐을 때 알면서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외로움과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아주 친절하다. 문체도 다정하고 설명도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점부터 대응책까지 정갈한 안내를 받는 느낌이다. 고립‧은둔과 관련된 조사 등 최근 자료와 통계를 인용하고 있어 시의성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시대의 외로움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답은 책이 아니라 삶에서 찾아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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