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호 Feb 02. 2024

돈은 필요 없어요

  원고나 강연 의뢰가 간혹 들어오면 먼저 내용을 들어보고, 일정이 맞는지 확인한 후 큰 무리가 되지 않으면 승낙한다. 원고료나 강의비를 먼저 묻는 건 속물 같아 피하게 된다. 보통 일이 끝나고 담당자가 ‘원고료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하면서 계좌번호와 개인정보를 적어달라고 서류를 건네시면 짐짓 괜찮은 척하면서 내가 오늘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 귀를 쫑긋 세운다. 돈에 상관없이 의도나 자리에 따라 흔쾌히 참여하는 일도 있지만, 시간을 내서 일을 했는데 나중에서야 원고료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김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


  모든 노동에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안받은 사람이 먼저 원고료나 강연료를 물어보는 건 쉽지 않다. 흔히 말하는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요구하면 내 의도가 다르게 비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선의 혹은 세상의 변화를 위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돈에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거나, 자신의 언행과 모순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임금 체불, 사기, 살인 등 돈 때문에 벌어지는 범죄들. 과로사, 산업재해 등 돈을 벌기 위해 일터로 나갔다가 건강 혹은 목숨마저 잃는 현실을 보며 돈을 증오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입에 ‘돈’을 달고 산다. 나와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이 없다’,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한다’, ‘돈이라면 영혼도 팔겠다’는 말을 하는 걸 들어봤을 거다. 그 정도로 내 삶에 돈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글쓰기, 평론, 음악, 활동가. 내가 지나온 일들은 모두 돈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큰돈을 벌기엔 글렀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이 많은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했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종일 온라인 쇼핑몰이나 당근마켓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하기도 했다. 현생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었다.


  정말로 관심 없다면 입에 올리기는커녕 생각조차 안 한다. 나는 돈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고, 돈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돈 때문에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며 자본주의와 소비사회를 비판하지만 누구보다 돈을 사랑한다. 나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벙커침대를 사고 싶고,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넓은 방에서 살고 싶다. 쌩쌩 돌아가는 노트북도 가지고 싶고, 감성 넘치는 핸드폰도 써보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나의 사랑 돈.


  돈을 증오하는 일에 내 삶을 투자했다. 그럴수록 돈은 내 삶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가까워졌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할수록 돈은 내 삶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돈만 주면 뭐든 하겠다’는 말은 나에게 돌아왔다. ‘돈 안 받고도 그만큼 했으면, 돈 받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으로 말이다. 내가 일한 시간만큼, 딱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최소선인 최저임금을 받으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증오는 이렇게 돌아와 나를 아프게 한다.


  처음부터 ‘저는 노동에 대가를 받지 않으면 일하지 않습니다’ 혹은 ‘저의 노동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에 따라서 돈을 받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말씀해 주시면 고민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더라면 좋았겠다. 돈을 증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조금 더 건강한 방식으로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었을 거다. 돈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과로로부터 나를 돌볼 수 있었을 테다. 이제라도 인정하기로 했다 ‘돈은 필요 없어요’라는 나의 말은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반동이었다. 돈을 ‘나쁜 것’이라고 판단했던 나의 감정에서 비롯된. 하지만 돈 자체는 중립적이다. 내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한 자의 발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