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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Mar 05. 2024

13년 만의 소개팅

3월 4일의 입학식

13년 만에 소개팅을 했습니다. 


사람이 긴장할 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대개 두 가지죠. 몸이 떨려 말이 없어지거나, 너무 상기되어서 오버하거나. 후자의 경우 실없는 사람, 호들갑 떠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은 잘 보이고 싶은 욕심, 좋게 각인되고 싶은 바람이 앞서서입니다. 그 마음이 사람의 행동거지를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지요. 부산함이 과도하지 않다면, 그 호들갑을 한 인간의 애정 어린 떨림으로 받아 들여 주는 넉넉함을 갖는 게 우리의 관계망을 풍성하게 넓히는 길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1학년 5반 아이들이 오늘 저를 그렇게 봐주었으면 좋겠네요...선생님의 호들갑이 너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라는, 어색함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발광이었다는 걸...


교직 10년 차쯤 되었을 때 품게 된 마음 중 하나가 정적과 침묵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고요는 무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유의 여백으로 채워져 있음을 인생의 이력이 길어질수록 알게 되었죠. 그런 인식을 갖게 된 후로 대화가 잠시 멈춰지더라도, 수업이나 회의에서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고요를 편안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오늘은 그게 잘 되지 않았던 하루였습니다. 아이들의 표정 하나에, 목소리 울림 하나에 마음이 요동치고, 어색함을 조금이나마 깨어보려 서두르게 되고. 모든 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 좋게 각인되고 싶은 바람이 제 행동거지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 겁니다.


13년 만의 소개팅을 한 것 같은 3월 4일의 입학식이었네요.

이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차분하게 애프터 신청을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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