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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Mar 13.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수업1

- 서평쓰기 1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저 / 창비 / 2022


아버지가 죽었다   

  

여러분을 처음 만나던 날, 제가 교실 입구에서 걸음을 한 번 멈췄다가 들어갔단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어떻게 첫인사를 건넬까. 어떻게 첫 시간을 가질까를 한 번 더 생각하며 첫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처음은 항상 특별한 법이니까요. 1년간 여러분의 다양한 모습을 마주하더라도 첫날의 미소는 오래 기억이 나요. 


첫 문장 앞에 작가들도 한참을 서 있고는 합니다.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을 고르고 골라 한마디에 담기 위해서입니다.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며칠을 고민했다고 하죠. 덕분에 임진왜란의 잔혹함과 민족의 수난사 속에서 우리는 다시 찾아올 봄을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기까지 합니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일곱 글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만큼 무겁고 받아들이기 힘든 삶의 주제가 있을까 싶은데, 농담 건네듯 툭 하고 던집니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요.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아버지라는 존재가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지닌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라는 표현을 볼까요? 대상에 이미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여 다른 사람이 뭐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리하지 않아요. 서술자는 아버지의 삶을 일정 거리를 두고 관망하길 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사랑’이란 감정도 떼어 놓고, ‘사회주의’ 같은 이념도 미뤄 놓고, ‘빨치산’이라는 내력도 제쳐 놓고 사람’ 자체를 마주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아버지라는 주인공의 죽음을 첫 문장에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죽음은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죠. 나아가 필연적으로 새로운 주인공을 요구합니다. 곧 이 소설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다음 세대인 우리를 위한 이야기입니다.

   

개 이름 같은 이름 '아리'     


사람 자체를 마주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구별하여 살피고, 들여다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속한 시·공간과 이를 함께 공유한 사람들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과정이 그 사람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소설은 아버지의 사연과 백아산 일대 사람들의 사연과 지리산 일대 사람들의 사연으로 넓어져 갑니다. 이러한 사연들은 얽히고설키어 딸 고아리로 다시 이어지죠. 개 이름 같은 ‘아리’라는 명칭 속에 백아산의 '아'와 지리산의 '리'를 담아둔 이유입니다. 나아가 아리라는 이름을 통해 허구적인 ‘나’와 실존적인 ‘나’도 아우러지죠. 작가의 이름 정지아, 지리산의 ‘지’, 백아산의 ‘아’. 아리는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요. 

 

여러분, 대한민국 교육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최근 내어놓은 2022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다양성을 가진 주도적인 사람으로 여러분을 길러내야 한다고 정의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극심한 분열로 인해 포용성도 다양성도 논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에요. 분단국가인 만큼 이념적으로도 그렇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겪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평가가 줄 세우기를 목적으로 하다 보니 교육적으로도 그렇고... 


경계는 선명해지고 틈은 깊어져 가는 사회 속에서『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우리에게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여러 생각거리를 줍니다. 한 학기 동안 이 책을 읽고 여러 질문들과 씨름하며 다함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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