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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승진 May 15.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수업4

159~217p

1.  소성철 선생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사이다. 그의 장남이 그들을 계속 찾아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체란 무엇일까?

공동체란 무엇일까요? 사전적으로는 “일반 생활이나 행동 또는 목적 따위를 같이하는 집단”입니다. 혈연처럼 자연적으로 구성되기도 하고, 개인의 가치관과 선택을 기반으로 무리를 이루기도 합니다. 문장에 나타난 좌익과 우익 후자에 해당 되겠네요. 어떠한 공동체든 성장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같은 목적과 공유된 운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말로, 구성원 누군가의 성공이 또 다른 구성원의 성공이 되고, 누군가의 실패는 그만의 책임으로 남지 않고 공동체가 함께 짊어짐을 뜻합니다. 성공의 결실도, 실패의 고통도 함께하는 무리가 본연의 ‘공동체’이지요.



이데올로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주의도 민주주의도 사상적 방향이 달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 살기 좋게 만드는 데서 출발합니다. 때문에 그 본질은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껴안고 가는데 있습니다. 소성철 선생님의 “좌익 시상이 되먼 니가 자를 봐주고 우익 시상이 되먼 니가 쟈를 봐줘라” 말에는 이러한 인간 사회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분의 아들답게 아들도 그 뜻을 잘 이어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장남의 실천적 행위가 서로를 돌보는 바람직한 공동체의 일면을 확인하게 합니다.


2. p190 전복죽을 쑤어온 ‘떡집 언니’는 작품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지난 시간에는 작은 아버지의 ‘사연’을 통해 한 사람의 존재를 이해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특별하거나 구체적인 사연이 드러나지 않는 인물도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떡집 언니’입니다. 레포(연락책)의 딸이자 떡집을 했다는 간단한 배경이 제시되기는 하나 아버지와 얽힌 특별한 사연이나 사건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영화에 빗대자면 주연도 조연도 아닌 단역쯤 되는 인물입니다.


잠시 1번 문항을 이어가자면 아버지의 삶이 아름다웠던 것도 머무른 자리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잘 실천하고 이루며 살았음에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순경 이야기도 같은 맥락 속에 놓여있죠.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으나 좌익 사람과 우익 사람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삶을 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본질적 이해라는 주제의 한 축은 아버지의 ‘장례식’을 통해 효과적으로 형상화됩니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 자체가 공동체의 구현으로 나타납니다. 대개 장례는 고인의 혈연, 특히 직계 가족들에 의해 주도되는 법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은 준비-진행-마무리 과정 전반에 있어 딸 아리와 어머니보다 오히려 다른 이들이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식장을 마련하고 절차를 챙긴 것은 딸이 아니라 황사장과 박동식이었고, 부고를 날리고 조문객을 챙긴 것도 박동식과 박한우 선생이었으며, 가장 중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챙긴 이 역시 바로 떡집 언니였습니다. 떡집 언니와 같은 인물들의 구성은 가족의 틀을 확장하고 공동체의 본질을 재인식하게 하는 힘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덕에 좌익 사람, 우익 사람이 모두 어우러진 사회의 일면으로 장례식이 구현됩니다. 


3. p210 ‘한 등에 두 짐 못 지는 법인디…’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열매는 함께 나누고, 짐은 조금씩 나눠지는 사회가 더불어 사는 바람직한 사회라면 그 반대 지점에는 한 개인의 실수나 죄를 따져 묻는 것을 넘어 관련된 이들까지 깡그리 책임 지우며 몇 배 이상의 죗값을 묻는 사회가 있습니다. 바로 연좌제 사회입니다.

여순사건 (출처:미국잡지 LIFE)

“모든 국민은 자기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은 위와 같이 규정합니다. 다만 이 조항은 1980년 10월에 제정됨으로써 이전의 우리 사회에 얼마나 연좌제가 만연했는지를 반증합니다. 가족 가운데 월북자나 반체제 인사가 있다면 각종 불이익을 받아야만 했는데 공무원 임용, 육군사관학교 진학 등 국가 관련 기관에는 채용이 불가능했고 여권 발급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작가 이문열입니다. 아버지가 1950년에 월북하는 바람에 경찰을 피해 늘 이사를 다녔고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채 건달 생활을 하기도 하죠.


작품 속 ‘아리’도 고삼 여름방학에 이 연좌제의 실체를 깨닫습니다. 고3 담임 선생님이 여러 신경을 써 주시지만 자신에게 찍힌 빨갱이의 낙인이 사라질 수 없음을 알고 공부를 작파한 후 밤밭 너럭바위에서 소설만 읽으며 다른 세상 속에 빠져듭니다. 평소 쉽사리 화내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아버지임에도 그러한 그녀를 보고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노기에 찬 얼굴로 호통을 치죠 


“언제꺼정 이리 허투루 살라냐! 니 어매가 시방 누구 땜시 저 고상을 허는디…인두껍을 썼으면 니도 밥값은 해야제!”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아리가 아버지께 내뱉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자기가 시방 누구 땜시 이 고상을 하느냐고. 인두껍을 썼으면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 길로 반내골을 떠나 서울을 향하고 더는 빨치산의 딸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리라 마음먹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면 어떤 인생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뜨거운 땡볕을 가볍게 걸어가죠. 하지만 아리보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이가 자전거를 타고 그녀를 쫓아오죠. 그리고 독한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저주와도 같은 이런 말을 누가 쉽게 내뱉을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같은 짐을 진 자만이 건넬 수 있는 말이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生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살아갑니다. 그 무게만해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작은아버지는 빨갱이 가족으로서 비롯된 또 다른 무서운 십자가까지 짐 지며 살아왔습니다. 아리의 등에 얹힌 두 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무게를 헤아릴 수도 있었던 것도 그런 까닭일 것입니다. 이쯤 되고보니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끝나서는 안되겠습니다. 아리의 해방일지, 작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우리 사회의 해방일지가 되어야 하겠어요. 그럼 일단 우리도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부터 해방되어 볼까요? 이제 한 번의 독서시간이 남았습니다. Let's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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