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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혁 Jun 08. 2023

발길 따라 제주 넘은 이야기 ⑤

가끔 돈을 주고 동심(童心)을 삽니다

2023년 6월 6일 제주 여행 2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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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길 따라 제주 넘은 이야기 ④ (brunch.co.kr)



여행을 계획하면서 엑셀까지 동원하진 않았지만, 이곳은 한 번 둘러 볼만하겠다는 장소를 몇몇 선정해 놨다. 그중 하나가 ‘피규어 뮤지엄’이었다. 사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피규어 전시가 잘 마련되어 있는 곳은 많다. 하지만, 대다수가 수익 창출을 위한 한시적 팝업 느낌이지 수집과 지속 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 이쯤에서 수집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수집은 어쩌면 판매와 정 반대쪽에 있는 말과 같다. 누군가 어떤 물품을 사고 싶다고 해서 당장 살 수 있는 말도 아닐뿐더러, 판매자 입장에선 그렇게 쉽게 판매를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피규어 뮤지엄은 말 그대로 각종 희귀성이 있는 피규어들을 한 군데 모아 놓은 박물관에 가깝다. 소위 마블(Marvel)과 DC코믹스와 같은 각종 미국 히어로물을 비롯해, 일본 애니메이션, 디즈니 고전 명작, <스타워즈> 및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한 시대를 대표했던 작품들의 피규어가 모두 전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나아가 주인공 위주의 피규어 진열이 아닌, 한 작품의 조연 역할의 등장인물까지 모두 소유하고 있을 정도다. 예컨대,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 극 중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 중장급 해군 간부 피규어까지 전시돼 있다.



피규어를 왜 좋아하냐고 물을 수 있다. 음, 조금 더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그 나름대로 동심(童心)이 들어있는 작품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른 언저리가 되자, 이전엔 차마 보이지 않았던 다소 매운 어른들의 세상이 부쩍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저 모이면 즐겁고 행복했던 양가 친척들의 모습에서 이제는 얽히고설킨 염세적 이해관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서로 이끌고 밀어주던 직장 동료들의 눈에서 속속들이 진급을 위한 야망이 느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좋은 회사를 갔고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냐는 것이 화두가 됐고, 이게 곧 우정의 척도가 되는 요즘이다.


그래서 더욱 동심을 갈구하게 됐다. 각박하고 매정한 세상에서 순수함만은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면서, 여유가 될 때마다 틈틈이 동심을 수집하는 취미 아닌 취미가 생겨버렸다. 픽사(pixar)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든 신작을 내면 고민 없이 영화 티켓을 예매한다. 아주 가끔은 동네 만화카페에서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소위 말하는 ‘성지’에도 가본다. 아이들을 보면 가끔은 요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동심을 샀다. 내 인생 캐릭터 ‘시카마루’다.


하지만, 이 모습은 어떻게 보면 돈으로 동심을 사는 것과 같은데, 이제는 한껏 뛰노는 아이와 같은 시선에서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라도 동심을 간직하고 싶은 내 순수한 마음을 알아 달라는 말이다. (웃음)


최근 뉴스를 보면, 이제는 길에서 누군가 지갑을 떨어뜨려도 선뜻 주워 건네 주기가 무서운 세상이다. 하다못해 바쁜 출근길 지하철에서 할아버지가 앞에 섰을 때, 질끈 눈을 감아 버리기도 한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선 부모님의 집이 임대 아파트인지 민간 아파트인지가 종종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세상에서 점점 동심이 사라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바라본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그리고 당신의 마음 한편엔 어떤 순수함이 자리 잡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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