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생각하는 우리 딸에게
우리 집 첫째는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성향이 이렇다는 걸 아이가 18개월 토들러일 때 처음 알아채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아이를 데이케어에서 픽업해서 집에 오면 재우기 전까지 3시간 남짓의 시간이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꽤 노력하는 편이다. 그날도 씻고 먹고 잘 준비를 하는 일과 가운데 아이 방에 있는 낮은 책상에 머리를 마주하고 앉았다. 책상 위에 크게 펼쳐진 종이 위에 각각 크래용을 들고 두들링을 했다. 간단한 모양부터 바나나, 딸기, 포도처럼 과일 등 이것저것 보여주고 색칠했다. 아이는 내가 그리는 모양에 큰 관심을 보였다.
“연재도 동그라미 그려볼래?”
“시더! 엄마가 해~”
종이 위에 마음껏 크레용질을 하며 즐기길 바랬던 나의 기대와 달리 아이는 자기는 동그라미를 못 그린다며 엄마가 계속 그려주길 바랬다. 아이가 그린 완벽한 동그라미를 보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아이는 완벽한 동그라미를 못 그릴 거라면 종이 위에 크레용 흔적을 남기는 것조차 주저했다.
올해 6살이 된 첫째는 지난달부터 줌으로 음악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매주 음표와 박자를 조금씩 배우고 매일 10분씩 함께 연습을 하고 있다. 매주 새로운 곡(이라고 해봤자 아직은 미국 버전의 ‘나비야’와 ‘떴다 떴다 비행기’ 정도이지만)을 배우다 보니 아이에게는 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한 박자부터 시작해서 이제 두 박자와 네박자를 구분해서 정확하게 치면서 동시에 음정도 생각해야 하고 심지어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 부위까지 신경 쓰다 보니 처음 음악을 접하는 아이에게는 여간 머리 쓰는 일이 아닐 것이다.
대체로 아이가 엄청 피곤해하는 저녁 시간대에 연습을 하는 영향도 크지만 아이는 박자를 놓치거나 실수라도 하면 종종 '으악!' 찌푸린 얼굴로 울먹이며 짜증을 낸다. 한 번씩 곡을 연주할 때마다 피아노를 못 치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지 당장 연습을 그만하고 싶은 표정을 짓는다.
"실수해도 괜찮아. 원래 어제 10개 틀리면 오늘은 9개 틀리고 내일은 8개 틀리고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덜 틀려가면서 점점 발전하는 거야."
"엄마는 네가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면 그걸 칭찬해주는 거야. 다 맞았다고 칭찬해주는 게 아니야."
재차 이렇게 말해주지만 아직 아이가 완전히 납득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 더 크면 이해하게 되려나?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첫째를 보면 아기였던 첫째와 함께 그림 그리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동시에 아이가 왜 이리 마인드셋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민하기도 한다. 아이의 원래 타고난 성향인 걸까, 아니면 나를 포함 주변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성공의 기준은 완벽함이라는 가치를 주입받은 걸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도 이미 지나간 과거다. 결국 앞으로 어떤 영향을 주느냐가 중요하겠지.
피아노 앞에서 틀릴 때 속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는 오히려 피아노를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라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 때문이 아니다. 음악 연습이라는 수단을 통해 함께 매일의 작은 실패를 성장의 관점으로 보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다. 실패를 하면 거기서 '난 역시 못해'라고 좌절하는 대신 오히려 도전 의식을 가지길 바란다. 어제 열 개를 틀리고 오늘 아홉 개를 틀렸다면 아홉 개 틀려서 좌절하기보다 어제 틀렸지만 오늘 성공한 한 개를 축하하며 성취감을 느끼길 바란다.
이 마음을 가지고 오늘도 "하나도 안 틀리고 잘 쳤네!"라는 말 대신 이렇게 칭찬을 해본다.
"와 연재 눈이 계속 악보랑 건반을 보고 있었네! 봐봐, 이렇게 집중했더니 오늘은 어제보다 소리가 조금 더 또렷해졌어. 조금 실수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이 보기 좋아."
이렇게 칭찬해도 아직 아이가 완전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차차 알게 되겠지. 아이와 함께 건강한 마인드셋을 키워가는 노력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