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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사서 Oct 27. 2024

시절인연

천성적으로 함께 있으면 기력이 빠지는 사람이 있다. 그저 가만히 있는 나에게 와서 자꾸 파동을 일으키는 사람 Y가 그랬다. 삶에 큰 에너지를 쏟고 살아본 적 없던 나는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모두를 휘말리게 하는 Y가 불편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어느덧 나보다 Y를 따르게 되었을 때도 아쉽지만 어쩌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냥 작은 위성 같은 사람이었다. 그저 변함없이 작은 일상을 반복하는 변화 없는 그런 삶이었다. 내가 품고 있는 것은 그저 내가 품은 것뿐이었다. 이것을 굳이 겉으로 보여주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삶에서 굳이 내가 나의 것을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재미없는 삶의 반복 그 사이에서 Y의 관심이 나를 향했다. 훗날 Y는 나에게 말했다.


"굳이 나를 밀어내는 네가 재미있어서 잘해주고 싶더라고."


그 말대로 Y는 나에게 참 잘해줬다. 직장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음에도 굳이 나의 집까지 자주 바래다주곤 했다. 느긋한 성격인 나와 칼 같은 성격인 Y는 늘 시간약속에서도 자주 다퉜다. 나는 늘 늦었고 Y는 그런 나를 늘 타박하면서도 몇 번이고 날 기다려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Y가 나와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듯 Y도 그랬을 것이다.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를 시작했지만 나는 나와 맺어진 인연은 그냥 그대로 이어갔다. Y는 많은 사람들과 수 없이 많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며 많은 사람들과 분쟁하고 인연을 끊기도 했다. Y의 소개로 Y의 사람들과 인연들도 있었지만 Y의 변덕에 자신은 끊어버린 인연도 나는 이어갔다. 굳이 많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편이 아니라 Y로 인해 만들어진 수많은 관계에 버겁기도 했지만 Y로 인해서 끊어내진 않았다. Y는 많은 사람들을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고 나면 그 사람의 단점을 나중에 보고 인연을 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처음에 그 사람의 단점을 먼저 보고 그 단점을 내가 감당할 수 있으면 친해지는 관계를 맺었기에 끊어지는 인연이 적었다. Y와 나는 천성적으로 참 다른 사람이었고 그래서 나는 재미있었고 Y는 편했던 것 같다.


10년의 인연동안 나는 내가 Y를 만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인생의 수많은 즐거움을 알았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수렴하던 나는 밖으로 나를 발산하는 방법을 배웠다. 20대까지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내 궤도를 끊임없이 돌고 있을 때 Y가 나타나 나의 궤적을 바꿔주었고 Y가 바꿔준 인생의 궤적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이었다.


그랬던 인연이 참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Y가 맺었던 수많은 인연을 끊었던 방법대로 별것도 아닌 일에 단번에 끝이 났다. Y가 나에게 베풀었던 많은 것들에 대한 허무였을 수도 있고, 순간의 변덕이었을 수도 있다. Y가 사람들과의 인연을 끊을 때마다 사람들은 Y에게 매달렸다. 그 모습을 보고 Y는 나에게 그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지겹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Y에게 그랬다.


"만약 Y가 나에게 지겨워지면 나는 매달리지 않고 그냥 끊어줄게요."


Y와 연락이 끊기고 몇 번이고 내 안에서는 화가 났다가 이해도 했다가 내 안에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수렴하며 생각했지만 아마도 그저 Y에게는 수많은 인연 중 가느다란 실 한가닥 잘라내듯 가벼웠을 것이다. Y가 맺고 끊었던 실타래처럼 많은 인연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10년의 인연을 맺으면서 Y는 나에게 늘 말했다.


"넌 너무 나를 대해서 잘 알아. 이제 그만 만나야겠어."


나는 아마도 Y보다도 Y를 더 곁에서 관찰한 사람이었으니까. 맞지 않는 관계를 시작하면서 내 안에 많은 것들을 Y에게 소모하면서 그 조차도 알지 못하는 감정을 읽어줬던 사람이니까. 그가 관계를 끊을 때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늘 잔소리했지만 방관하던 사람이니까. Y가 얼마나 가볍게 나를 쳐냈을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래서 난 약속대로 단 한 번의 매달림 없이 Y와의 끝을 받아들였다. 나는 또 다른 나의 궤적을 그리며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왔고 Y는 여전히 새로운 관계들을 맺으며 또 다른 나의 대체제를 찾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Y가 밉거나 싫지 않다. 아마도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던 일이었다. 짧을 줄 알았던 시간이 10년이나 이어졌던 것뿐이다. Y의 변덕에 금방이라도 끊어질 줄 알았던 인연이 또 그 변덕에 의해서 10년이나 이어졌다. Y가 바꿔준 10년의 일탈이 나의 삶에서 아주 큰 선물이 되었다. 평생을 한 곳에서 같은 것만 경험하며 꿈꾸지 않았을 많은 것들을 Y가 이끌어 보여주고 밀어주었던 것은 다시 생각해도 내 인생의 선물 같은 일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은 어쩌면 조금 슬픈 말이지만, 나에게는 고마운 말이다. 원망과 슬픔이 조금도 없다. 만약 이 관계가 더 길어졌다면 나는 내 인생의 궤적에서 아주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나를 이끌어주고 또 놓아준 시절인연 Y를 떠올리며 단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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