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review]
남녀 간의 임금차별, 특정성별을 대하는 평등하지 못한 잣대,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불안한 하루하루. 세상을 살면서 여성으로써 겪는 불평등과 공포는 당연했고, 불편했고, 나는 이가 늘 불만스러웠다. 나의 남동생은 나와 달리 새벽 늦게 걷는 골목길이 무섭지 않았고, 혼자 자취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으며, 개발도상국의 어린아이들은 우리와는 달리 성인이 되기도 전에 조혼을 하고, 교육의 기회가 박탈된 채 일차 노동력으로만 쓰인다. 불평등한 교육의 기회는 편중된 권력구조를 만들고, 이는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한다.
불평등은 아주 넓게, 그리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은 빈곤과 허기에 시달리고 죽어가지만, 우리는 배부르다며 음식을 남기고 낭비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자원을 낭비하지만, 남극의 빙하는 점점 녹고 아마존의 나무들은 끊임없이 베어진다. 왜 우리는 이러한 불평등 속에서 살아야 하는걸까. 단순히 어느 나라, 어느 집, 어느 성별로 태어나느냐가 인생의 기로를 결정한다. 마치 제비뽑기에서 누구는 재수없게 꽝을 뽑고, 누구는 운이 좋게 당첨을 뽑은 것처럼 우리의 인생을 단순히 운명에만 맡겨야 하는걸까.
우리는 모두 ‘사람’이라는 같은 존재로 태어났지만, 너무도 다른 대조적인 삶을 살아간다.
도시계획에서도 불평등은 존재한다. 비교적 풍족하고, 교육의 기회가 잦았던 비장애인의 젊은 백인남자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도시이론들. 남성이 주도한 도시에는 외딴 골목길과 어두침침한 공원처럼 사회적 약자를 미처 배려하지 못한 공간들이 많다. 이러한 이론들을 공부해온 나부터도 옛날의 골목길을 보존하자고 외치고, 외부공간이 넓은 건축 설계안을 마치 정답인 것 마냥 제시하곤 한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에게 늦은 저녁 골목길을 혼자 걷는 일은 어쩌면 큰 용기를 내야만 가능한 일이며, 넓은 외부공간에 비해 부족한 기반시설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잠시 앉아서 쉬어갈 공간도 내주지 않는다.
2015년에 제정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은 미래사회가 수반해야만 하는 17가지의 목표를 제시한다. 계획을 함에 있어, 막연한 감성과 스토리에 호소했던 지난날의 계획안들이 부끄러워진다. 앞으로의 지향점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강의였다.
평등한 사회, 평등한 도시, 평등한 세상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기억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과거에는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불편한 것이 되었고, 불편함에 대해 토로할 수 있게 된 이 작은 변화가 증명하듯이 우리는 긍정적인 변화의 과정 한 가운데에 있다. 자원과 기회를 재분배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의 일반화를 통해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