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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Aug 01. 2023

멸망은 번개처럼 닥친다

말도 안 되는 단편 소설

A는 평범한 노동자로서 성실하고 신실하며, 신앙심이 깊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일을 마치고 나면 한눈파는 일 없이 집으로 와 방으로 들어갔다. 재미라는 것을 알기는 할까 싶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비 예보가 나오면 수해를 방지하러 뛰어갔고, 좋은 일거리가 생기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줄지어 이동하고 열심히 힘을 보탰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든 종교적 규율을 따르며 살았다.


A는 신앙심이라고는 없는 B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B는 늘 하늘을 살피라는 계율을 무시했다. 땅 보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소리냐며 코웃음을 쳤다. 가만히 있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 일하라는 계율도 싫어했다. 일만 하고 살다 가는 것이 무슨 삶이냐고 했다.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바람이 불면 몸을 숨기라고 하건만 제자리에서 꼼짝도 않으며 버티기 일쑤였다. 저러다 멸망을 받게 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예언에 의하면 계율을 지키지 않은 자에게는 멸망이 번개처럼 닥친다고 했다. 멸망에 대해서는 다들 의견이 분분했다. 번개처럼 닥친다는 것은 번개가 친다는 것을 돌려 말한 것이다, 멸망은 전염병을 의미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등. A는 늘 멸망이 번개처럼 닥친다는 것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말한다고 주장했다.


일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면 심각한 부상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이들이 종종 보였다. 그들은 심각한 부상으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가끔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이들에게 가서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말했다. 계율을 무시했다고. 하늘을 살피지 않았다고.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몸을 숨기지 않았다고. 너무나 갑자기 사고가 나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 상태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A는 몸서리를 쳤다. 안전히 오래 살고 싶어 했다.


날씨가 화창한 날이었다. 일거리가 많다는 연락을 받고 A는 모두와 함께 일터로 줄지어 이동했다. 생각보다 먼 곳이라 걷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어 계율들을 되새겼다. 도착해 보니 너도 나도 일하는 것에 바빠 계율을 어기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A는 수시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늘 그렇듯 푸르고 구름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열심히 움직이며 일하라는 계율도 지키기 위해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B는 업무 현장에서 한참 벗어나 구석에 숨어서 쉬었다. 이 좋은 날씨에 일만 한다는 것이 될 말인가 하면서.


갑자기 어두워지고, 바람이 불었다. A처럼 계율을 열심히 외우던 일꾼들은 황급히 숨을 곳을 찾았다. 일터는 평평한 곳이어서 아무도 숨지 못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A는 불안이 엄습했다. 일을 마치는 내내 하늘도 살피고, 열심히 일하면서 어디 숨을 곳이 없는지 살폈다. 넓은 일터를 벗어나야 몸을 기댈만한 곳이 조금 있었다. 작은 그늘을 지나면 쉴 곳들이 제법 있었지만, 게으름을 부리기 싫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B를 만났다. B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는 이야기만 10번도 넘게 하며 즐거워했다. A는 너무나 지쳤다. 어두움과 바람으로 인해 신경을 너무 많이 쓴 탓이었다.


다음 날은 일거리가 없어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다. A는 여전히 바빴다.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일거리도 열심히 찾아야 했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일해야 한다는 계율을 지키지 못했기에 저녁 즈음에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멸망이 언제 닥칠지 몰랐다. 어떤 날은 계율을 잘 지킬 수 있었고, 어떤 날은 그럴 수 없었다.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A는 점점 계율을 지키는 것에 무뎌졌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일을 않아도, 하늘을 열심히 보지 않아도, 어두움과 바람이 함께 올 때 가만히 있어도 멸망은 오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이었다. 일거리가 많다며 모두 줄지어 일터로 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바람이 일었다. 일부는 서둘러 몸을 숨길 수 있는 좁은 곳을 찾아 흩어졌지만, A는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B는 A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요즘 A와 말이 좀 통했다. 더 이상 계율 운운하며 귀찮게 하지 않았다. B의 눈앞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곧 밝아졌다. 어마어마한 바람에 몸이 밀려날 뻔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A는 없었다. 주위가 소란스러웠다. 몇몇은 심각한 부상을 입어 널브러져 있었다. 비명이 들렸다. B는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멸망이 번개처럼 닥친 것이었다.



아유, 그걸 왜 잡어!

줄지어 가니까 신기해서요. 이거 봐요.

세게 눌러서 죽었잖니! 저기 버려. 생명은 소중한 거야. 개미 함부로 죽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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