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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Jul 31. 2020

공무원이란 것을 깜빡했어요.

이게 발행하는 마지막 글이 되겠습니다.

구독을 눌러주셨던 많은 분들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더 이상 글을 쓰면 안 되겠습니다.

글을 모두 발행 취소했습니다.


쓰기 시작하니 봇물 터지듯 이런저런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더군요.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마구 써대기 시작했습니다.

발행하지 않았던 글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깨달았지요.

저는 공무원이라는 것을.

정부의 시책에 따르는 것이 공무원의 의무입니다.

예를 들면 4대 강 사업을 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복구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국민들과 나라에 손해가 가지 않게 많은 노력을 하면서 

어떤 것이든 정부가 시키는 것을 해내는, 해내야 하는 조직입니다.


공무원은 사적인 의견을 내면 안 됩니다.

의견을 내는 것은 금기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깜빡했습니다.


휴직하고 시간이 되자 즐겁게 이런저런 경험들을 글로 썼지만

곧 제 의견을 피력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심한 글들은 써놓고도 발행을 못했습니다.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글들에서도 가끔 날 선 댓글을 봤습니다.


여자로서의 저의 경험을 쓰고 있자니 언젠가는 젠더 문제가 될 수 있겠고

교육자로서의 경험을 쓰고 있자니 능력도 없는데 괜한 의견 제시가 문제가 될 수 있겠고

미국에서의 경험을 쓰고 있자니 너무 지엽적인 정보를 미국 전체의 경험인양 받아들일 수 있겠더군요.

특히나 어떤 정책이나 사회 문제에 남들과 다른 의견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쓰면 정말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나 저는 공무원이니까요.

토론 문화가 정착하지 못하고 흑백논리로만 모든 것을 대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이런 글쓰기는 매우 부적절한 것임을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왜 공무원은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요?

참 답답합니다.


태풍과 폭우가 쏟아져 대피령이 내려진 곳에 가족들 버리고 뛰어가 일하는 사람.

폭설로 대중교통이 마비되면 걸어서라도 나가서 일하는 사람.

산불이 나면 불 끄는 것에 지식도 없는데 일단 산에 투입되는 사람.

코로나 19로 다들 꺼리는 해외 입국자를 집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고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안전 확인을 하는 사람.


어떤 분들은 이런 사람들이 단기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더 군요.

다 공무원입니다.

실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 책임이 따르는 일에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투입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무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부를 축적한다는 국민들의 신념(?)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내부 정보를 다루면서도 일절 그 내용을 가족에게조차 발설하지 않고, 이용하지 않는 공무원도 있습니다(시간이 한참 지나서 지나가듯 말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안다 해도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삶에 바쁘거나 돈이 없으니 딱히 뭔가 행동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 지인 중에서 그런 정보 이용해서 친인척 이용해 투자하는 사람 봤다"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분명 나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 좋은 사람보다 적습니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하긴 제가 교사고 제 주변 공무원들도 뭔가 돈 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라 제가 뭘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지인에게 투자 정보를 말해준다고요? 정말 공무원의 자질이 없는, 공무원 욕 먹이는 사람이겠지요. 공문서에 "대외비"라고 되어 있는 것은 밖에 나가서 말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인 지인이 그런 정보를 선심 쓰듯 말해주면 "너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니?"라고 말씀하십시오!


그런 점에서 공무원을 정직원이 아닌 단기 근무 형식으로 뽑았을 때 과연 업무를 제대로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다루는 공문에는 개인정보나 대외비 정보가 있고, 잠시 근무하다가 나가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뭔가 댓글이 달리겠네요.


공무원연기금이 각종 거대 기업들에 위기가 닥쳤을 때 공무원들의 동의 없이 국가 차원에서 빼내어서 지원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무원연금이 적자가 심해졌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 말이 없고, 적자가 심하다는 것만 이야기한다고요. 이 부분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 "카더라"라서 아마 잘 아시는 분들이 댓글을 다실 확률이 높겠네요.




여기까지입니다.

공무원임에도 자꾸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의견을 쓰고 싶어 지는 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브런치에 글을 적지 않고, 통계를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글을 발행 취소했습니다.


구독 중인 좋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크기에 탈퇴는 도저히 못하겠네요.

브런치와 글 읽어주셨던 모든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1년 채 안 되는 기간이었지만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다들 삶 속에서 행복한 경험 많이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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