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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다 May 03. 2022

유난히 바람 많이 맞은 날

운은 존재하는가?

아침부터 예약 메시지가 왔다.

"이중 주차하기"

퇴근길에 당근 거래가 있어서 일찍 차를 빼야 했다. 예약 메시지가 아니었으면 안쪽에 차를 대고, 약속에 지각할 뻔했다.


퇴근 30분 전 예약 메시지가 왔다.

"당근 거래 약속이 있습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나설 뻔했다. 과거의 나에게 감사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빠릿빠릿하게 뛰어나가 차를 몰았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썼는데 답신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뭐지?


거래를 포기하고 예전 근무지에 갔다. 찾을 짐이 있었다. 같이 근무하시던 분께서 열쇠를 둘만 아는 장소에 두시기로 했었다. 열쇠는 없었다. 오후에 바쁜 일이 생겨 잊고 퇴근하셨다고 했다. 전화로 열쇠 있는 장소를 안내받아 짐을 찾으러 갔다. 이번엔 짐이 없었다, 내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나? 열쇠를 제자리에 두고 건물을 나섰다.


시장에 들러야 했다. 수선을 맡긴 옷이 다 되었다고 찾으러 오란 메시지가 왔었다. 시장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갔다. 급히 가서 옷 수선 가게 문을 당기니 잠겨있었다. 간판에는 20시까지 연다고 되어있었지만 아직 19시였다.


발길을 돌려 계란을 사러 갔다. 이번엔 잊지 않고 사야지 싶었다. 오늘따라 계란 찾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못 샀다.


피곤했다. 집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 오래간만에 안부 전화를 드릴 분들이 떠올랐다. 3분 중 한 분도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들 이건만 오늘 오후 신이 날 버렸나 싶어졌다. 현관문을 닫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 거울을 보니 푸스스하니 날리는 머리가 산발이다. 짧은 퇴근길에 바람을 몰아서 맞았다.


운이란 게 있긴 한 모양이다.

오늘은 분명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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