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중년의 일상 May 23. 2024

6월, 아카시아 향기

고향의 추억

5월 초 국립경주박물관에 갔던 날, 수장고 쪽으로 걸어가는 데 진한 꽃향기가 스쳤다. 익숙한 고향의 향기다. 양쪽을 둘러봐도 아카시아꽃은 보이지 않았다. 옥골교에 다다르자 진한 향기가 가까이 다가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수장고 한편에 아카시아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살랑바람에 하늘거리면서 더욱 꽃향기는 진하게 퍼졌다. '과수원 길' 노래가 생각났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노래가사처럼 실바람 타고 솔솔, 하얀 꽃송이가 얼굴 마주 보며 쌩긋했다.

   

계절을 잃은 6월의 아카시아가 5월 초에 만개했다. 며칠 전 양양 진전사 답사를 갔을 때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아카시아꽃을 따 먹으면서 "옛날 그 맛이다." 했다. 비슷한 연대에 시골에서 자란 모양이다. 유년 시절 아카시아꽃을 따 먹었던 기억이 났다. 아카시아꽃의 향긋한 향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향기다. 아카시아꽃은 향기가 진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났다. 하길에 동무들과 아카시아를 먹으며 집으로 갔다. 당시는 아카시아꽃에 농약을 뿌리지 않았다.


6월, 초록이 짙은 산속을 헤집고 들어가 아카시아 나무에 매달려 하얀 꽃을 주먹을 따서 한입에 넣었다. 지금은 초록이 무성해지면 잔디밭에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지난 일요일 경주 원성왕릉에 갔을 때만 해도 왕릉 주변에 뱀이 많다고 해서 초록이 우거진 곳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철없던 시절에는 뱀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풀 속을 가로질러 다녔다.  


등 하굣길에 뱀이 슬그머니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고 겁에 질려 달음박질치면서 안간힘을 다해 달렸던 기억도 있다. 특히, 아카시아꽃이 피는 6월에 뱀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도시 언덕배기 먼 산에 아카시아꽃을 바라보면 아카시아꽃의 들큼한 단맛과 뱀이 함께 떠오른다. 고향의 산에는 유난히 아카시아가 많았다.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 갈수록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던 것 같다. 


4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벌통 몇 개를 산에 두고 벌꿀을 받곤 했다. 사각 벌통 안에 벌꿀이 벌집모양으로 얼음조각처럼 벌꿀을 담고 있었다. 당시는 벌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는 벌이 아카시아꽃에 붙어 있었는데도 벌을 겁내지 않았던 것 같다. 오로지 아카시아꽃을 따 먹는 재미에 빠져 뱀도 벌도 겁내지 않았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지금은 벌도 뱀도 무서워서 산에도 안 가고 벌도 피해버린다. 그 어린 시절 산골 아이들은 용감했다. 무덤에서 놀기도 하고,  산딸기가 잡풀 속에 엉켜있으면 풀을 헤치고 딸기를 먹었던 그때도 6월로 기억한다. 지금은 5월에 아카시아꽃이 피고 진다.


고향의 아카시아꽃은 6월에 피고 졌다.  



작가의 이전글 잊을 수 없는 모내기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