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에 그 당시 사수께 받은 과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인턴으로 있던 팀은 인천공항에서 출도착 항공기의 주기장을 배정하는 업무를 했기 때문에 - 두 개 FSC의 조인트벤처가 인천공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 하는 내용의 OJT를 진행했다. 하나의 과제를 시작하면서, 나는 직박구리 같은 새 이름 대신 이런 이름의 폴더를 PC에 만들었다.
이보다 완벽한 이름의 폴더는 없을 거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다음 달이면 드디어 입사한 지 만 4년이 된다. 그러니까 365일을 꽉 채워 4번을 일해왔는데 아직도 업무가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항공산업은 코로나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았기 때문에 내가 뭔가를 해볼 일이 많지 않았다. 내 주 업무인 관제업무는 당연히 익히기 어려웠고 심지어는 여러 가지 교육, 출장, 회의가 열리는 걸 구경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 상황에서도 나름 뭔가 해보겠다고 UAM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거나 할 때에는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지 ‘미생의 과제’ 폴더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인턴 때의 업무 폴더라서 안에 고이 잠든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을 봉인해두고 싶었다. 솔직히 이제 미생은 벗어난 상태이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자만이었다.
평일 주간 근무만 하는 주간 전문 관제사가 되고 난 후, 팀 사무실에서 몇 개의 과제를 받기 시작했다. 사소한 업무부터 계약 건까지. 약 4년 만에 다시 만난 행정일이 적응이 안 되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나는 다시 ‘미생의 과제’ 폴더를 열었다. 인턴 때 재미있게 했던 OJT는 잠깐 열어본 후 새로운 폴더를 만들어 소중하게 한 쪽에 밀어두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미생을 당연히 벗어난 줄 알았는데 아직 관제에서도 그리고 행정에서도 미생이 아니라 미생물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절망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친한 입사 동기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는 것 부터가 업무의 시작이었다. 인턴 때 재미 삼아 지었던 폴더 이름이 미래의 내 회사생활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을 줄 몰랐다.
이도 저도 못하고 도움도 안 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한창 울적하던 날에는 친한 학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 항공사에서 운항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선배는 얼마 전에 진급을 했다고 한다. 5년 차인데도 아직도 업무가 힘들어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자, 선배는 우리 같은 ‘코로나 기수’는 어쩔 수 없다며 걱정 섞인 위로를 건넸다. 못하는 건 당연하니까 조금 더 버텨보라는 이야기도. 듣고 보니 3년 동안에 코로나라는 변수가 나를 괴롭혔을 뿐 내 잘못은 없는 것 같네라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가 미생인 건 내 잘못이 아니라 환경 탓이었군.
앞으로 2년 정도만 시간이 지나면 미생물도 벗고 미생이라는 이름도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