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의 효율성이 가져온 불편함.
이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비대면 시대로 전환되는 요즘에 인터넷과 전화로 이루어지는 일들도 상당히 많다.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진행되는 업무야 눈으로 보고 수행하면 되지만 전화를 활용해야 하는 일들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장벽에 부딪히곤 한다. 특히 보험계약이나 은행업무 등 자금과 관련된 부분은 본인 확인이라는 이유로 전화상의 안내 및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꽤 많다.
최근 전자제품 렌탈을 알아보던 중 답답한 일을 겪었다. 카카오톡 상담을 통해 렌탈샵 상담원과 상담을 진행했는데 가격과 렌탈 조건 등 기본적인 사항들을 물어보며 순조롭게 얘기를 진행하던 중에 본인인증 전화가 안되면 계약이 어렵다는 안내를 받았다. 사실 상담원의 업무 특성상 매뉴얼대로 안내를 하고 업무를 수행하는지라 본인인증 전화가 안되면 어렵다는 답변을 줄 수도 있다. 크게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만약 상담원이 본인의 판단으로 전화인증을 생략하는 경우 나중 발생할 문제들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할 수가 있고 두 번째로는 업무 프로세스상 전화인증이 안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안된다고 안내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지만 매뉴얼이라는 것이 우리의 모든 사례들을 대변하지 않는가. 그렇게 되면 나 같은 청각장애인은 전화가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일까?
조금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렌탈샵 본사에 직접 문의를 했다. 다행히도 본사의 직원분(총괄 매니저)은 굉장히 친절하게 응대해주시고 개인적으로 문자까지 보내주셨다. 친절한 응대를 해주셨지만 역시나 돌아온 답변은 조금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비대면 시대가 오고 시간을 단축해서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하기 위해서 아직도 전화가 필요한 경우가 제법 있다. 우리가 흔히 좋은 사회라는 막연한 주제를 가지고 얘기할 때 다양성, 약자들에게 관대한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렌탈샵에서 안내했던 근거가 되는 매뉴얼? 또는 프로세스? 들은 다양성을 위한 장치와는 거리가 멀다. 보편적인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대응인 매뉴얼이 사회 소수자인 장애인들을 위해 작성되었을 리 없고 약자들을 위해 별도의 규정을 만들었을 리도 없다.
이렇게라도 글을 쓰지 않는다면 아무도 장애가 어떻게 불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최근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발달장애 학부모 삭발시위를 보면서 과격하다고 말하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장애인 가족이 없다면, 다른 유형 장애를 가졌다면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비장애인인 나의 가족조차도 살면서 막연하게 어려운 점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살다 보니 정말 불편한 게 많았겠구나라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나의 시선이 장애를 직접 경험해 볼일 없는 누군가에게 좋은 간접 경험이 되길 바라는 점이며 이런 점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이해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