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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Yang Feb 03. 2024

모던 경주

경주는 한 해 4,0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도시다. 코로나 사태 이후 폭발한 여행 욕구에 힘입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기록이지만, 이런 흐름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지게 될지는 찬찬이 살펴볼 일이다. 경주가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고, 수많은 국내외 여행자들이 다녀가는 매력적인 도시인 것은 분명하지만, 경주가 그런 명성에 걸맞게 다채로운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인지는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숙박시설 등의 인프라는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문화예술적 콘텐츠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 깊이와 넓이를 갖고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된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경주를 소개하는 정보들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경주의 고적과 맛집을 소개하는 대동소이한 정보의 반복에 머물고 있지 않느냐는 느낌이다. 고적을 둘러보는 일정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수학여행 코스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보문단지에 엑스포공원과 워터파크가 추가되었고, 황리단 거리의 맛집과 숙소가 인기 검색어가 되어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서 신선함을 잃어가는 도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있다.


경주를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피상적 수준에 머무는 현실은 경주 시민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돌아보면, 나도 경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고향 땅의 대부분 영역은 그리 궁금하지 않은 공간이었다. 익숙하지만 무지한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낸 셈이다. 몇 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한 후에 비로소 경주를 새롭게 알아가게 되었다. 그 몇 년의 시간에 경험한 경주가 훨씬 더 깊고, 넓고, 흥미진진했다. 질문이 바뀌니 보이는 것이 달라졌고, 경주가 달리 보이니 느끼는 감성도 훨씬 입체적이 되었다. 그렇게 ‘더 깊은 경주’를 파고 들어본 지난 몇 년 간 호기심의 결과물이 2022년에 쓴 <낭만 경주>이다. 조금씩 깊어진 경주 여행과 역사 공부의 결과물을 이제 두 번째로 엮어내게 되었다.


기원전 57년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시작된 신라는 경주를 수도로 하여 56대에 걸쳐 왕조를 이어왔다. 지증왕(재위 500-514) 시기부터 국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삼국 간 경쟁을 해오다가 나당연합군을 형성해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후삼국의 경합 속에서 결국 935년 경순왕이 왕건에 항복하고 고려에 흡수됨으로써 신라는 멸망하고 만다. 신라의 멸망 이후 역사는 개성을 수도로 한 고려, 한양을 수도로 한 조선 등 왕조를 중심으로 기술되다 보니 수도의 지위를 잃은 경주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대중들은 학교에서 배운 역사 지식이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같은 역사책,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신라시대의 이야기는 꾸준히 접할 수 있었으나, 고려-조선 시대의 경주 역사나 이야기는 거의 듣기 힘들었다. 우선 그 시기의 경주를 통째로 다루는 문헌이 별로 없다. 그 당대의 선비들이 남긴 개인 문집을 수집하거나, 경주를 언급하는 여러 사서를 모아서 경주에 대한 그림을 재구성해보는 수밖에 없다. 역사를 전공하고,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면 자료에 접근하기가 매우 힘든 조건이었다. 다행히 최근에는 경주에 관련된 여러 중요한 고문헌들이 수집, 정리되어서 번역되는 경우도 늘어났고, 역사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장애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모던 경주'란?

제대로 된 통사는 전문가들의 연구에 맡기고, 여기서는 ‘신라 이후의 경주’ 천 년 역사 중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는 1860년에서 1945년까지 백 년이 조금 못 되는 시기를 개관하며 살펴보려고 한다. 나는 이 시기가 ‘모던 경주’라고 이름 붙일 만한 시대이고, 전근대에서 근대로 진입하는 경주의 이모저모를 다양한 인물과 사건으로 그 특징을 뚜렷이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1860년부터 시작인지는 본문에서 자세히 드러나겠지만, 이 해는 수운 최제우가 경주 현곡의 용담계곡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동학을 창도한 해이다. 조선 후기의 여러 사건 중 근대로의 진입에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한 대격변의 시작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경주에서 그런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러 모로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를 거치면서 그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그 변화의 양상이 경주라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벌어졌는지를 그려내 보고 싶었다. 해방과 한국전쟁부터 시작되는 현대사는 또 다른 논의의 장을 필요로 한다고 보아 이 책의 범위는 1945년 해방까지로 제한했다.


이 시기는 현재 경주의 주요한 특징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하기도 하다. 이 시기를 파악하면 오늘의 경주를 이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경주는 문화유산의 도시로 유명하지만, 언제부터 이런 역사와 관광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는지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경주는 고도(古都)로서의 상징적 위상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근대적 관광도시로 변모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구체적인 정책과 개발 작업을 거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도로와 철도의 개설뿐 아니라, 광범위한 문화재의 발굴 작업이 그 시기에 일어났다. 이것은 단순히 일제의 계획으로만 된 것도 아니었다. 경주시민들과 식민지 총독부, 경주 거주 일본인 등과의 밀고 당김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외에도 경주를 대표하는 여러 인물과 사건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이렇게 맥락을 구성하고, 각 인물과 사건에 자리를 찾아주는 작업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경주를 이해하는 작업은 그 시공간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을 규명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독자들도 경주에 살든, 경주를 여행하든, 이런 풍성한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가 보기를 권해 본다.

  

연재의 구조

이 연재는 크게 4부로 구성된다. 제1부는 ‘19세기의 경주’를 빠르게 훑어 내린다. 고려와 조선에서 이어져온 경주의 위상을 개관하고, 그 변화를 압축해서 소개한다. 경주는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나라는 망하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경주는 조선후기까지도 행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전국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던 주요 도시였다. 고려에서 조선까지 경주의 역사적 위상을 알 수 있는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고, 조선말 경주의 전반적 사회 상황과 그 시기를 뒤흔든 대사건으로 경주지역에서 발원한 동학운동의 면모를 살펴본다.


제2부는 ‘20세기의 경주’ 이야기다. 일본의 등장과 더불어 진행된 근대화 과정과 경주가 일찍부터 관광도시로 개발된 전후 이야기를 보게 된다. ‘식민지 시기의 근대화’를 두고 매우 첨예한 역사 논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면서 경주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명암이 잘 드러난다. 이 시기에 일제는 어떻게 ‘관광도시 경주’를 만들고자 했는지,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와는 어떤 갈등과 타협이 있었는지, 현재의 경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질문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제3부는 독립운동 이야기다. 이 부분은 경주에서 정말 들을 기회가 없었던 이야기이다. 자료를 통해 재구성한 경주지역의 삼일만세운동, 박상진 의사, 최부자집의 독립운동을 소개한다. 글을 쓰면서 경상도 지역의 독립운동이 매우 일찍부터 강경한 무장투쟁 노선에 있었다는 점과 그것이 지역의 독립운동 전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시기에 희생하고 고투한 이들의 잊힌 역사를 다시 보게 되어서 매우 감개무량했다. 이들의 이야기가 더 널리 알려지고, 지역사회가 기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제4부에서는 경주가 낳은 문학가와 사상가를 찾아보았다. 시인 박목월과 소설가 김동리의 작품세계가 경주의 자연과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고, 경주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문학적 화두를 더 깊게 탐색해 볼 기회가 풍성히 제공되기를 기대한다. 재야의 사상가로 유명했던 김범부 선생에 대한 연구와 재평가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경주는 유적과 유물에 비해 사상과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정신문화에서 그 진가가 충분히 평가되지 않은 곳이다. 일방적 찬양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재평가가 필요한 풍부한 문화적 자원이 경주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작업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경주를 알아가고 그에 대한 글을 쓰는 작업 역시 나 자신을 알아가는 내 나름의 방편이자 여행이다.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 취향, 행동, 욕망, 인생관 등이 경주란 시공간에 투사되어 내 글에 묻어나게 된다. 자신을 내보이는 것은 언제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글을 쓰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격려해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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