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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나무 Mar 20. 2020

해외에서 산다는 것은 1

코로나가 보통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엄마의 수술

엄마가 수술을 해야 된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올해 1월이었다.

이유는 회전근개파열.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큰 질병은 아니지만 수술 후 최소 1달 깁스 착용, 반년은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술 후 관리가 더 중요한 질환이다.


"수술 없이는 안 된데? 물리치료나"

"지금 상태로는 안 된데. 내버려 두면 더 심해진데. 내일 대학병원에 가보려고. 엄마 진짜 수술하기 싫은데."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괜찮을 거라 전화를 끊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렇게 일말의 희망을 갖고 대학병원을 찾았던 엄마는 오히려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인공관절을 넣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결국 수술 날짜를 잡았다.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할 엄마도 돌봐드리고 휴가도 쓸 겸, 남편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통화할 때마다 큰 딸이 보고 싶다던 엄마는 딸 내외가 항공권을 끊었다고 하니 목소리가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수술에 대한 두려움을 만남에 대한 반가움으로 조금이나마 덮을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설마 계획이 틀어질 거라는 의심은 1도 하지 못한 채 한국 방문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 사태는 중국 내륙을 넘어 한국으로, 일본으로, 바다로 그리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휴가를 1달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캔슬되는 항공편, 한국 출발 비행 편 입국 금지, 자가 격리를 어길 시 수만 달러에 해당하는 벌금에 징역 조치 등, 한국에서 7,020 km 떨어져 있는 이 대륙도 신종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엄마, 한국 못 갈 거 같아. 미안."

"아니야, 엄마도 안 오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한국은 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 나중에 엄마 낫으면 그때 와서 같이 놀러 가자."


엄마를 챙기러 가려한 건데 낫고 나서 오라니. 마음이 짠했다. 이 시국에 수술하는 엄마 자신을 더 걱정하지 않고.


'해외에서 산다는 거 참 불편하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더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지난 2년 동안 문득문득 들었던 씁쓸함이 한 번 더 낙엽처럼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해외에서 산다는 것의 장단점을 나열하면 끝이 없겠지만, 내게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특히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아이가 생기고 나면 더 그립다는 친정엄마의 손길.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이 되어가는 부모님. 이 사실들을 모르고 결혼해 해외로 온 것이 아님에도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내가 무엇을 놓고 온 건지 깨닫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스며들어온다.


1년에 꼭 한 번은 한국을 갈게요. 부모님께 했던 딸과 사위의 약속.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벌써부터 어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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