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Self)의 부름이 다가오는 형태
*사진: Unsplash
'자기를 찾는 여정'은
결심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글을 읽었다고도 아니고,
명상 한 번 해서 깨어나는 것도 아니다.
자기의 부름이 오는 형태는
주로 삶의 파국적인 일이 등장했을 때이다.
1. 무의식이 흔들릴 만큼 강한 자극이 왔을 때
2. 에고가 "이 질문은 내가 답할 수 없다."는 한계감을 느낄 때
이런 상황에서 자기는 "내가 나설 타이밍이다."하고 앞으로 등장한다.
삶이 부서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위의 두 가지 상황이 동시에 벌어지면
자기를 찾는 여정은 시작된다.
예를 들면, 평소에 쓰던 사고 구조의 한계를 정면으로 보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다.
1) 페르소나 구조를 정확하게 비추는 경우
예를 들어
페르소나가 체계적, 논리적, 조심스러움, 책임감, 통제, 이미지 관리 등의 특성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였다면,
"페르소나는 나의 일부일 뿐이다, 그게 나의 본질은 아니다."라는 글을 접하는 순간,
무의식에서 "어? 이건 나의 이야기인데?"라고 반응하고,
페르소나 외의 자신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수 있다.
2) 자기의 선택 기준을 읽는 순간
이게 나에게 진실한가?
이 선택이 나를 확장시키는가?
내 존재감이 살아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평소에 가장 피하려 해왔다면,
(이렇게 피하는 이유는
안정, 위신, 역할 충족, 사회적 안전지대와 관련되어 있다.)
"지금 너의 선택 기준은 에고냐 자기냐?"라는 질문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경우이다.
3) '역할 기반 관계'와 '자기 기반 관계'의 차이점을 보게 되었다면
자기 상태에서는 역할을 부수적이고
나는 나로 존재하게 된다.
직업적으로 역할 중심으로 살아왔고,
인간 관계에서도 역할 중심 패턴이 있다면
이러한 글은
"너의 관계 방식이 이미 한계에 왔다"는 메시지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자기가 보내는 부름은 어떤 생각들로 일어나는가?
자기와 자아, 페르소나에 대한 이론들을 읽으면
무의식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이 글의 기준이 나에게도 적용된다.
나는 이 기준을 충족하나?
내 선택은 왜 늘 조심과 회피 중심인가?
나는 무엇을 진짜로 원하나?
나는 페르소나 없이 살면 어떤 사람이 되나?
이 질문들이 올라오는 순간,
자기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된 상태이다.
자기는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부름을 받게 되면,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은 한 번 시작하는 이상, 이전의 방식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이를 인정하든 억누르든, 그 사람의 인생은 이미 방향성을 잡아버렸으니까.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한 번의 부름으로 응답하지 못하기도 한다.
흔들린 자기를 에고가 다시 덮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는 계속적으로 우리를 뒤흔든다.
파국적인 일들이 벌어지거나
충격적인 사고의 변화가 일어나거나
그런 여러가지 일들로.
우리가 응답하는 그 순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