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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May 05. 2022

어른 같지 않은 어른으로 키우겠습니다

 ‘아이고, 어린애가 참 의젓하네, 어른스러워!’

 2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누군가가 내게 해 준 말이다. 보통 칭찬으로 건네는 말이기에, 그때는 상당히 뿌듯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꽤 민망한 말이다. 게다가 어른이 된 지금은 ‘무슨 그런 유치한 생각을 하냐?’라는 말을 더 자주 듣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 당시 그분은 나의 어떤 행동을 보고 칭찬의 의도를 담아 그런 이야기를 전해주셨겠지만, 교사가 되고 나서부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당시 내가 들었던 말이 정말 칭찬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칭찬의 용어로 사용하지는 않고 있다. 아이들이 어른스러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우리가 보통 ‘어른스러운’이라는 표현을 주로 어떨 때 사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른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떤 일을 처리할 때, 어른들 틈에서 조용히 있을 때, 주어진 어떤 일을 인내심 있게 잘 해낼 때 정도. 내가 아이였을 때는, 주로 저런 상황에서 듣곤 했으나, 당연히 이밖에도 다양한 상황에서 어른스럽다거나 철이 들었다는 표현이 오고 가곤 한다. 반대로 ‘아이답다’라는 말을 떠올려보면 사용해 본 적이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3학년인데 아이 같다.’, ‘고등학생인데 아이 같다.’ 정도로 사용되는 것이 전부일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냥 긍정적인 의미로 보기는 또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생활하다 보면 어른과는 정말 다른, 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행운의 순간들이 참 많다. 대표적인 한 가지가 바로 ‘비교’의 순간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비교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은, 그것이 눈에 보이거나 형체가 없는 것일지라도, 비교의 대상이 되곤 한다. 비교는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둘 이상의 것들을 맞대어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알아낸다는 비교의 정직한 뜻에 좋고 나쁨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른들은 비교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한 나름의 판단을 덧붙인다. 특히나 누군가의 좋은 점, 잘난 점을 발견했을 때 유독 그런 것이 심해지곤 한다. 


‘쟤는 어떻게 저런 걸 잘하지?’
‘쟤는 벌써 저걸 다 한단 말이야? 나는? 우리 아이는?’
‘나는 왜 저러지 못할까….’


 어른들의 비교는 다시 자기를 향하는 화살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위축되거나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어떤 책에서는 비교 자체를 하지 말라며 충고하곤 한다.


 교실에서 다양한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비교의 상황은 어른들 못지않게 자주 찾아온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정반대다. 어른들의 비교가 ‘-(뺄셈)’라면 아이들의 비교는 ‘+(덧셈)’에 가깝다. 


‘우와, 이거 뭐야? 나도 알려주라.’
‘너 이거 진짜 잘하네! 이것도 해봐 줄 수 있어?’
‘다음에 나 이거 하려 하는데, 그때 너는 이거 잘하니까 같이 할래?’


 아이들은 이런 말들을 나누곤 한다. 물론 ‘와, 대박!’이라는 더 간단한 표현 속에 진심을 담아 비교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비교를 통해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얻기도 하고, 무언가를 잘하는 좋은 친구를 둔 것 자체를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철이 없고 순진하다며 ‘아이답다’라는 표현을 듣는 아이들이야말로 옳은 자기 존중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철이 일찍 들어서 착하다거나, 생각이 깊고 어른스럽다는 ‘칭찬’의 말을 자주 듣는 아이들은 어찌 보면 어른의 세상에 들어가기 직전 단계에 있는, 너무 일찍 비교와 속상함 사이의 연결을 알아차린, 그래서 어른들이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지내며 수많은 것들을 배워나간다. 당연히 그 어떤 어른도 “저 친구와 자꾸 비교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거라”라며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대놓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 또 한 번의 ‘자존심 상하는’ 지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한마디 말보다 비언어적 전달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가는 경우가 많다. 어른의 행동과 표정, 느낌 또는 분위기에서 말로 하는 것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배우곤 한다. 친구에게 진심으로 인정받는 것보다, 지나가는 말일지언정 어른들의 용어로 인정받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느낀 아이들은 그렇게 서서히 어른들을 닮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다워야 한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어른답다’라는 말은 빨리 어른처럼 사고하고, 어른같이 행동하기만을 바라는 우리 어른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가득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리 교실에서만이라도 아이답게 행동하고, 아이답게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 있어하며, 아이답게 당당하게 자신을 뽐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나는 어느새 나를 당당하게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 남과의 비교에서 위축되거나 속상함을 더 자주 느끼는 보통의 ‘어른’으로 자라 버렸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어른으로 자라길. 이후 그들의 어른들로부터 “어른이 되고도 철이 없네. 어른이 되어도 어른답지를 못하네”라는 꾸짖음을 들을지언정 남들과의 비교에서 한없이 자신을 깎아내리고, 스스로 자신을 패배시켜버리는 그런 어른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렇게 다짐해본다. 


 “어른 같지 않은 어른으로 키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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