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싸프디 Mar 24. 2022

키즈 리턴, 아이들은 돌아온다. 어디로?

기타노 다케시 <키즈 리턴> (1995)

영화의 마지막 씬. 신지와 마사루는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탄다. 신지가 마사루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제 끝난 걸까요?" 마사루가 답한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이 대사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희망인가 절망인가? 영화는 정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 답을 관객들의 몫으로 남긴다.


희망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신지와 마사루 둘 다 여느 인생과 같이 고통으로 가득한 시간을 지나왔지만 여전히 삶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러 근거가 있지만 영화 외부에서 근거를 가져오자면 이렇다.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목숨을 잃을 뻔한 오토바이 사고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안면마비라는 병을 얻은 후 만든 첫 번째 영화가 이 영화이다. 감독이자 배우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역작 <소나티네>(1993)에서 주인공을 연기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배우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은 안면마비가 생긴 것이다. 그는 병상에 누워 회복을 하며 자신의 인생은 70프로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병상에서 일어나 만든 첫 번째 영화가 바로 <키즈 리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다케시 본인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와 결기의 메시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비평이 희망으로 해설을 하고 있어서 이 글에서는 절망의 경우를 더 깊게 파고들어 볼까 한다. 마사루의 마지막 대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어른의 삶을 시작도 하지 못 한 아이들의 절망을 담은 것일 수도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삶을 개척하는 어른의 삶을 아직 시작도 못 한 것이다. Kids return. 아이들은 돌아온다. 어디로? 학교로. 고등학생이었던 신지와 마사루는 졸업 후 학교 밖을 떠돌다 마지막 씬에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그들의 동선이 그리는 폐곡선은 고등학생 시절과 다름없이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그들 인생의 행로를 드러낸다. 그들은 그 폐곡선을 뚫고 나가 어른의 삶을 시작하지 못한다.


고등학교는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수업을 받는 곳이다. 졸업 후에는 어른의 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 사회는 판매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상사에게 욕을 먹는 곳이고, 택시 운행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교대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운행을 해야 한다. 또 관객이 3명만 있는 무대에 올라 시치미 뚝 떼고 만담을 해야 한다. 그곳에 들어서기 직전 아이들이 받는 마지막 교육을 제공해야 할 학교, 그곳이 바로 고등학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물들은 그 마지막 수업을 받지 못한다. '공부 안 해도 되니까 평범한 친구들에게 방해만 되지 말라.' '야쿠자는 못 될 것 같고 그냥 양아치가 될 거다.' 등등. 신지와 마사루는 어떤 선생님에게서도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단순히 학생들이 국립대를 가느냐 사립대를 가느냐만을 따지는 교사들은 신지와 마사루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그렇게 어른이 되기 위한 수업을 받지 못 한 아이들은 고등학교로 돌아온다. 졸업은 했지만 어른이 되진 못 한 것이다.


비단 교사들만 인물들의 미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들이 그러하다. 야쿠자 보스는 마사루에게 '복싱 그만두지 말아라. 안 그러면 야쿠자가 된다.'라는 입바른 말을 하지만 그가 복싱을 그만두고 자신을 찾아오자 부하로 받아준다. 신지와 마사루의 부모는 영화에 얼굴 한 번도 비치지 않는다. 복싱장 관장은 챔피언 타이틀에만 관심 있고 신지가 링 위에서 무기력하게 두들겨 맞고 있는 것을 보고도 그냥 맞게 내버려 둔다. 신지의 복싱장 선배인 하야시는 신지가 시합을 앞두고 체중감량 중이라고 해도 술과 안주를 권한다. 먹고 마신 것을 게워내면 그만이고 체중 감량을 위해서는 약을 먹으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사루의 보스가 총에 맞아 죽은 후 등장하는 야쿠자 회장이 있다. 마사루가 보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소리치며 방을 뛰쳐나가는데 야쿠자 회장은 자신의 부하에게 골프나 치러 가자며 깔깔댄다. 이 야쿠자 회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어른들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고 가장 사회적 위치도 높은 걸로 봐서 아이들에게 무관심한 어른들의 표상으로 읽힌다.


아이들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다. 향방을 잃고 방황한다. 수학 시간에 다트 문제를 풀 때 마사루가 신지가 들고 있던 과녁에 다트를 던지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선생님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신지가 과녁을 내려 다트가 같은 반 학생의 뒤통수에 꽂히는 것처럼 인물들에겐 자신을 내던져야 할 과녁이 없다. 신지와 마사루의 같은 반 학생이자 훗날 다방 직원 사치코의 남편이 되는 인물은 저울 판매원을 하다가 변변치 않아 택시 기사를 하지만 여전히 실적을 올리지 못해 택시를 무리하게 운행하다가 사고가 난다. 이후 그가 영화에 등장하지 않고 그의 아내 사치코가 다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보아 그는 죽은 것으로 보인다. 신지는 복싱 챔피언을 꿈꿨으나 자전거를 타며 배달을 하고 마사루는 야쿠자 보스를 꿈꿨지만 백수가 됐다. 삶의 방향을 잃은 둘은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온다. 운동장에서 목적지 없이 자전거를 타며 제자리를 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길 잃은 청춘의 방황을 마냥 비관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영화는 신지와 마사루가 고등학교 시절 벌이는 의미 없지만 유쾌한 장난과 비행을 활기 있게 그려낸다. 삶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듯, 영화는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체험케 한다. 신지와 마사루가 선생님을 희화하는 인형을 만들어 선생님을 놀리는 장면. 성인영화관에 들어가려고 분장을 하고 어른 흉내 내는 장면. 마사루가 던진 다트가 동급생의 뒤통수에 맞는 장면. 비록 실패했지만 신지가 복싱 챔피언이 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는 장면. 만담꾼 듀오가 결국 만담꾼으로 성공해 관객석을 가득 채우는 장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지와 마사루가 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빙글빙글 도는 장면.  이 모든 장면들이 하나같이 추억처럼 아련하다.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대사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가 모든 비관적인 전망을 뒤로하고 은근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러한 삶의 향기를 영화가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막 찍은 거 같은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