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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우 Mar 18. 2020

인생이 껌껌할 때 껌을 씹으세요. 천 원.

강현우 드림

 망원역 1번 출구 스타벅스는 늘 사람들로 분주하다. 매번 지나치는 길이지만 쌀쌀해진 날씨에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고민 없이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결제와 동시에 ‘강*우 님 4,100원 11/08 04:32 스타벅스 망원점 지급 가능액 405,670원’이라는 문자가 핸드폰을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주머니에 넣는 사이 ‘A-27 고객님의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져 나왔다. 


 카페 옆 올리브영을 지나 있는 단독 주택의 감나무는 담을 넘어 도보 위까지 뻗어 있다. 감나무는 가을의 끝을 알리는 듯 잘 익은 감을 하나 둘 도보를 향해 던졌다. 주렁주렁 탐스럽고 예쁘게 달려있던 감들이 때를 놓쳐 떨어지고 터지고 짓이겨져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 있었다. 행여나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밟은 사람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발을 비볐다. 

 뻗어 나온 감나무 앞으로 물건을 파는 할머니가 앉아 있다. 앉은 돗자리 위로는 카카오 프렌즈 인형(엉덩이를 닮은)과  살짝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놓여있고 ‘볼풀장’에 사용하는 공이 귤이나 담겨 있을 법한 소쿠리에 담겨있다. 할머니의 눈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쫓지 않고 부서진 감을 향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떨어지는 감을 낚아채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밟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지만 아쉬운 손길로 무릎을 천천히 쓸며 자세를 고쳐 앉을 뿐이었다.

 뜨거웠던 커피가 따듯해질 때쯤 잔뜩 힘이 들어간 바람이 불었다. 가지를 잡고 마지막까지 버티던 감들이 툭 떨어졌다. 찌그러진 냄비가 살짝 흔들리고 공이 쌓여 있던 소쿠리가 엎어졌다. 공은 제 길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굴렀다. 할머니는 움츠려 앉아 굴러가는 공들을 눈으로 쫓았다. 공을 쫓는 다급한 눈빛과는 다르게 몸은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공을 하나 둘 주워 할머니 앞에 놓고 떠났다. 내 앞으로 굴러가는 공을 주워 소쿠리에 살포시 올렸다. 할머니는 그 모습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분홍색 니트에 분홍이 섞인 보라색 조끼, 그 위로 체구가 큰 남자가 입을법한 검정 패딩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할머니는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다. 인형도 냄비도 공도 필요 없는 나는 감나무와 할머니 사이를 어제처럼 오늘도 지나친다.

 하루는 양은냄비 옆으로 자일리톨 껌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인생이 껌껌할 때 껌을 씹으세요. 천 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박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삐뚤빼뚤하게 적힌 문장이 발길을 잡았다. 주변을 살피고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껌 한 통을 구매했다.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두 눈이 천천히 깜빡였다. 


“고마워요.” 

할머니의 목소리는 움츠린 몸집만큼이나 작았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껌을 한 통 씩 샀다. 어떤 날은 오천 원짜리를 건네며 다섯 통을 집어왔다. 그런 날이면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해 주셨다. 그렇게 쌓인 껌을 친구들에게 한 통씩 나눠주며 말했다.

 

“인생이 껌껌할 때 껌을 씹어라.”


 그럴 때면 친구들은 ‘어쭙잖은 라임.’, ‘쇼미 더 머니에 나가면 바로 불구덩이 행.’, ‘껌 맞아? 벌레 튀어나오는 장난감 아니지?’등 애정 어린 반응들을 보이며 친구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요즘, 흰 종이를 펼칠 때마다 캄캄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던 내게 친구들이 쉬쉬하던 그 문장은 적잖은 위로로 다가왔다. 만약 카드 결제가 됐다면 껌을 살 때마다 '강*우 님 1,000원 11/20 04:46 위로 한 개 망원 감나무 앞 노점 지급 가능액 280,270원'이라는 문자가 핸드폰을 울렸을 것이다.

그렇게 위로를 사고 싶은 날이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을 때면 주변을 서성이다 사람이 가장 없을 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껌을 한통 집어 들고 돈을 건네드렸다. 내가 위로받기 위해 하는 이 행위가 선행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가을은 길지 않았다. 땅에 떨어졌던 감들은 얼룩만 남긴 채 사라져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더 이상 떨어뜨릴 게 없는 메마른 나무를 여전히 흔들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더 이상 그곳에 나오지 않았다.

 가을이 지난 후 자취방의 어둠은 더 짙다. 손을 더듬거리며 작업대로 향해 스탠드를 켰다. 며칠 째 올려져 있던 흰 종이가 빛을 받아 어두운 방을 밝게 만들었다. 아직 차가운 냄새가 묻어 있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편한 옷을 입고 작업대에 앉아 서랍 두 번째 칸을 열었다.


‘하나, 둘, 셋, 넷 … 열다섯.’


서랍엔 아직 열다섯 통의 껌이 들어 있었고 그중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었다. 껌껌했던 종이 위로 자일리톨 향이 하얗게 깔렸다.






글. 사진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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