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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우 Jul 25. 2020

fling

강현우 드림

"기차에서 몸을 내 던진 적 있나요?"

 어느 여름날 오후 교수님의 질문이었다고 했다. 


 창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그림자가 소리 없이 창을 두드렸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매미소리와 햇살이 창 밖의 나무들이 무색할 정도로 강의실을 생기롭게 만들었다. 초여름 풀냄새를 닮은 학생들을 바라보던 교수가 말을 이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본 적 있나요?

영화에서 여자는 기차에서 처음 본 남자와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함께 내려요. 여러분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목적지를 뒤로하고 기차에서 내릴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봐요."


다들 머뭇 거렸고 자기 또한 우물쭈물하며 주위를 둘러봤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때의 넌 어떤 마음이었는데?"


"나는 말이야.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없겠지 하면서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낭만을 품고 살아. 근데 낭만이라는 게 살짝 건들기만 해도 입을 꼭 다무는 조개처럼 조금은 수줍어. 그래서 들고 싶었던 손을 주머니에 눌러 넣었어."


 블타바 강(Vltava river) 위로 유람선이 지나갔다. 배 위의 사람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너도나도 카메라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몇몇은 강변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그 바람에 네 어깨끈이 구슬처럼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어깨 끈을 고쳐 올리며 너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하루 내내 서로를 탐색하고 음미하며 마음을 열어가죠. 그렇게 하루를 꼬박 함께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해요. 하룻밤 불장난이었을까요. 아니면 사랑이었을까요. 어땠을지는 그들만 알 수 있겠죠.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거예요. 그 순간을 직접 격지 않는 이상 그들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죠. 

 

매미소리가 강의실에 낮게 깔렸다.

어린 묘목처럼 줄 지어 앉아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교수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가을이에요. 인생의 절반이 지나버렸죠. 가을의 내가 초여름의 여러분에게 감히 추천할게요. 만약 여러분이 삶을 살아가다 기차에서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게 아플지언정 혹은 후회로 남을지언정 내던져 보세요. 내려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가을이 오기 전 여름날의 선택들이 많이 자리 잡길 바라요.


교수님의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됐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따라 내린 거야?"

"교수님이 그 날 한 이야기에서 바꾸고 싶은 게 하나 있어."

"뭔데?"

"'내려야겠다.'보다는 '내려졌다.'는 표현이 더 가까워. 생각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였거든."


구름이 강을 따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유람선은 카를교 밑으로 꼬리를 감췄고 지던 해는 노을과 함께 성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완전한 밤이 다가왔다. 이 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맞잡은 두 손 사이로 그 날의 밤을 감췄다.





글. 사진 

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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