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우 드림
프롤로그
언제나 그랬듯 핸드폰을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언제나 그랬듯 버스는 그 시간에 내 앞에 섰다. 더 빠른 환승을 위해 섰던 플랫폼 5-1, 가장 빨리 도착하기 위해 걷던 골목들. 아침이면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가 일을 했고 저녁이 되면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나 넓은 세상에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딱 이만큼이었다. 나의 삶과 상상력은 그 위에 멈추고 말았다.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림여행을 떠났다. 두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여행 길 위에 서있다. 여행은 상상과 현실의 반복이었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상상들은 직접 발을 디뎌 현실과 마주하는 순간 적잖게 깨졌고, 그 틈 사이로 또 다른 상상들이 피어 올랐다. 나는 그것들을 놓칠세라 종이 위에 그렸다.
원하는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그리기 위해서 나는 가난한 여행자가 되어야 했고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두 발은 자갈의 무심함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고 때로는 간절한 눈빛을 엄지 손가락에 담아 차를 세워야 했다. 그렇게 천천히 멈추지 않고 길을 걸었다. 1년 쯤 걸었을까 어느새 아프리카가 내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세상 아름다움의 절반은 바다 밑에 숨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첫 목적지는 이집트 다합이었다. 사계절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따듯한 바다 홍해에 인접한 마을, 그리고 저렴한 물가 때문에 여행자들의 블랙홀이라고도 불린다. 항구 초입에 택시기사들이 모여 서로 태워가겟다며 실랑이를 벌인다. 그 틈을 비집고 나와 걷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시선은 점점 발 끝으로 떨어지고 가방의 무게가 어깨를 통해 무릎까지 내려왔다. 다시 얼마쯤 걸었을까, 기분 좋은 바람이 코끝을 간질여 떨어진 고개를 드니 눈 앞엔 볕을 담아 반짝이는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볕을 머금은 바다 주변으로 예쁘게 익어가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바닷속을 탐하고 싶은 사람들은 주렁주렁 장비를 달고 바다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남자는 물속이 더 궁금했는지 두 개의 산소통을 메고 있다. 산소를 다 마신 사람들이 하나 둘 뭍으로 나와 볕 아래 몸을 넌다. 며칠 밤낮을 배워 물속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나도 산소를 연신 삼키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누군가가 사용했을 낡은 수경 건너로 이름 모를 산호초들과 물고기들이 자신의 색을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내뱉는 숨소리만 바닷속 적막을 깼다. 그렇게 바다 밑은 고요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세상 아름다움 절반은 바다 밑에 숨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