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우리 집에는 성냥이 많다.
언제나 손 닿는 곳에 둔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오하이오 블루 팁.
전에는 다이아몬드 제품을 좋아했지만
그건 우리가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을 발견하기 전이었다."
짐 자무시의 [패터슨]은 패터슨 시의 버스 기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다룬 영화입니다. 패터슨의 일상은 단순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출근합니다. 일과 시간 동안 버스를 운전합니다. 퇴근 후엔 로라와 저녁을 먹고, 반려견 ‘마빈’과 산책을 합니다. 산책은 늘 단골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일상이지만, 패터슨은 자신만의 일과를 하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시를 쓰는 것입니다.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한 패터슨은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비밀 노트에 시를 써나갑니다. 그의 시는 대부분 그의 주변에서 기인합니다. 식탁 위의 성냥갑, 즐겨 찾는 술집 등은 패터슨에게 좋은 창작 소재가 됩니다.
무엇보다 패터슨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는 그의 아내 로라입니다. 노트에 쓴 시를 절대 공개하지 않는 패터슨과 달리 로라는 자신의 예술 감각을 발산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녀는 늘 분주합니다. 집의 컬러와 구조를 바꾸고, 새로 산 기타를 치고, 새로운 요리를 시도합니다. 패터슨은 그에게 익숙한 일상을 천진하게 흔드는 로라에게 때로는 난처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그녀를 깊게 신뢰합니다. 그가 쓴 시의 대부분- 심지어 성냥갑에 관한 시조차 결국은 그녀를 향한 헌정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사랑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성취를 이룬 예술가의 삶에는 대부분 치열함과 고독이 서려 있습니다. 정점에 서기 위해 세상과 등을 돌렸던 천재들을 보면 예술과 평범한 삶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패터슨]은 이런 유형과는 조금 다른 예술가의 삶을 다룬 영화입니다. 버스를 운전하는 아마추어 시인인 패터슨은, 생업에 충실함과 동시에 예술가의 주의 깊은 시야를 늘 유지합니다. 출근 전 아침을 먹으면서 물끄러미 바라본 성냥갑은 그의 시가 됩니다. 버스 밖 풍경은 그의 시가 됩니다. 테이블 위 맥주잔은 그의 시가 됩니다. [패터슨]은 예술을 위해 생활을 내던지는 것이 아닌, 생활 안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에 관한 이야기인 셈입니다.
“나 아름다운 꿈을 꿨어. 우리에게 아이가 둘이야. 쌍둥이.” [패터슨]의 첫 대사는 로라의 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쌍둥이에 관한 짧은 대화를 나눈 후, 패터슨은 영화 내내 각기 다른 쌍둥이들을 목격합니다. 이것은 그가 허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없던 쌍둥이들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도 아닙니다. 로라와의 대화가 패터슨에게 ‘쌍둥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던져준 것입니다. 아마도 패터슨은 곧 쌍둥이에 관한 시를 쓸 것입니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