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성준 작가의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읽고
선배 카피라이터였던 지인이 전자책을 출판했다.
제목은 <아내 없이 제주에서 한 달 살기>. 북이오라는 플랫폼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한동안 책 읽을 심적 여유가 없다가 문득 틈이 생겨 스크롤을 넘겼다.
스르르 편하게 읽힌다.
재미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책 내용을 돌이켜보니, <삼시세끼 - 작가 편> 같은 인상이었다. 제주에서 한 달 동안 먹고 자고 글 쓰고 몽상하는 이야기들이 부담 없이 흘러간다. 다만, 삼시세끼스러운 연출과 억지 재미요소들을 덜어내어 더 담백한 느낌이다. 연출하지 않은 삼시세끼랄까.
'한 달 놀기'가 아니라 '한 달 살기'다.
제주에서 한 달 놀기라면, 제주에서 경험한 음식, 풍광, 에피소드, 깨달음 등이 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편성준 작가는 한 달을 일상스러운 일상으로 채운다. 쌀을 사려 동네를 헤매고 쿠쿠 밥솥으로 밥을 지어먹는다. 고기를 구워 먹고 예전에 봤던 책과 영화를 떠올린다. 산책을 나섰다가 아내와 안부를 나눈다. 은행 직원과 통화하며 다음 일을 걱정한다. '제주'보다 '살기'에 방점이 찍혀있다.
남이 밥을 짓고 고기를 굽는 내용이 뭐 재밌을까만은, 재미있다. msg를 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등심구이를 구워 먹었다'는 한 줄이 작가의 허당미 덕분에 간난고초를 겪은 끝에 얻어낸 등심구이가 된다. 자신의 부족하고 허술한 부분까지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일상은 생생한 이야기가 되고, 순간순간마다 긴장과 리듬이 생긴다. 읽으며 나는 때로 킥킥거렸고 때로 한숨이 나왔고 때때로 애잔했다.
크고 작은 일상이 나열되는 가운데, 종종 독서 이야기들을 마주친다.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 제주에 내려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이야기는 한층 더 풍성해진다. 일상 속 허술한 매력과 책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단짠단짠으로 어우러지며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이 그려지고, 매력이 더해진다.
책은 남편의 제주 한 달 살기뿐만 아니라, 아내의 서울 한 달 살기도 함께 담겨 있다. 책에 다른 제목을 매겨본다면, <둘이서 홀로 한 달 살기>라고 말할 법하다. 서로를 아끼는 두 사람이 따로 혼자가 되었을 때 그 빈자리를 메꾸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화학실험처럼 보인다.
남편인 편성준 작가는 그 빈자리를 낯선 곳에서의 일상으로 채운다. 아내인 윤혜자 작가는 소중한 이의 부재로 인해 흔들리는 일상을 보여준다. 남편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진하다. 서로 놓인 지점이 달라서 그러할 것이다. 편성준 작가는 제주라는 비일상 공간에서 목적성을 가진 채 행동했고, 윤혜자 작가는 서울이라는 일상 공간에서 빈자리를 마주해야 했으니. 윤혜자 작가의 분량이 적어 아쉽다. 더 풍성했어도 좋으련만. 기록에서 출발한 원고이니 어쩔 수 없는 지점이었을 것이다.
가끔 회사동료에게서 '주말에 뭐했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보통 '아무것도 안 했다'고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일들을 했으나 말로 털어놓을 가치가 있나 싶어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편성준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 일상이 내 생각보다 좀 더 가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무뚝뚝한 언어 아래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순간들. 그 일상의 꼬물거림이 적절한 언어를 만나 이야기가 된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구순하게 옮기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되고 의미가 생겨난다. 편성준 작가의 책은 그렇게 읽혔다. '살기'에 대한 찬가. 일상 속 작은 모든 순간에 대한 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