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덕 Mar 14. 2020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즐거웠습니다



  나는 바다로 향했다. 공기가 적막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집에 사람은 많았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들, 외숙모, 다른 친척들. 다들 말이 없었다. 쟁반에 놓인 사과에 갈색이 번져가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장례식장에서 많은 말이 쏟아졌다. 짙은 호곡. 새된 울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국 더 드릴까요. 저쪽 테이블에 반찬 좀 더 깔아야겠다. 소주요. 잠시만요. 상주는 자리를 지켜라. 저렴한 관으로 할게요. 뭐 좀 먹었니. 왔다간 저 사람들은 누구니. 봉안되는 곳은 어느 정도 높이인가요. 김 모 씨 오만 원. 얼마라고? 오만 원이요. 여기다가 서명하면 되나요. 고생했다. 가자. 이미 너무 많은 말을 우리는 게워냈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괘종시계의 소리는 뾰족했다. 침묵은 길었고, 누군가는 시계 소리에 시덥잖은 말을 더할 터였다. 적막도, 이어질 무의미한 말도, 나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걷다 보니 북쪽이었고, 걷다 보니 바다였다.


  몸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니, 용두암 부근이었다. 근처에 해수 사우나가 보였다. 며칠째 제대로 몸을 씻지 않았다. 사우나를 들어가 몸을 씻었다. 씻고, 씻고, 씻었다. 씻고, 또 씻었다. 씻고 나오니 다시, 갈 곳이 없었다.

  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해안도로 한쪽에 편의점이 보였다. 맥주를 두 캔 샀다. 오른편에는 바다가 있었다. 도로변에 난 계단을 넘어 바닷가로 내려갔다. 갯강구들은 흩어져 돌 틈에 숨었다. 검은 돌들 사이 움푹 패인 곳에 무릎을 껴안고 몸을 구겼다. 아무도 내려오지 않을 곳.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곳. 나는 맥주를 따고, 바다를 보았다.

  바다는 바다였다. 푸른 바다. 붉은 저녁놀에 살짝 물든 바다. 늘 그렇듯 적당히 구름이 끼어 시뻘겋지도 푸르지도 않은 애매한 빛깔. 늘 그렇듯 몰아치는 바람. 늘 그렇듯 철썩이는 파도소리. 파도와 불화하는 검은 해안. 늘 그렇듯 아름다운 제주 바다.

  바다는 예뻤다. 바람은 상쾌했다. 누나는 죽었고, 바람은 상쾌했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니 짜릿했다. 맛있었다. 나는 울었다.

  맥주가 맛있어서 울었다. 바다가 예뻐서 울었다. 맥주는 맛있고 바다는 예쁘고 눈과 몸이 즐거웠다. 즐거워서 울었다. 즐거움이 죄스러워 울었다. 파도소리를 넘어 울음소리가 새어 나갈까봐 조용히 울었다. 남은 맥주를 바다로 줄줄 버리며 울었다.

  울음은 잦아들고, 나는 다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갈 곳은 여전히 없었다.


  나는 왜 바다로 갔나.

  10여 년 전 생각 없이 걷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묻는다.  그때의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한다. 아마, 기억에 이끌렸을 거라고. 어렸을 적 즐거웠던 기억. 남매가 손잡고 외할머니와 바다로 놀러 갔던 기억. 물놀이라 해서 신났지만, 실상은 보말을 줍고 깅이(작은 게)를 잡던 기억. 찰방찰방 물을 튀기고 서로에게 끼얹던 기억. 예쁜 조개껍데기를 줍고 설렜던 기억. 집으로 돌아와 보말을 삶아 이쑤시개로 속을 빼먹었던 기억. 그 바다의 사소한 기억. 그 즐거움의 기억. 의지할 데라고는 기억밖에 없어서, 기억 속에 고개를 처박고자 했던.

  나는 왜 사람을 떠나 바다로 갔나.

  사람에게 기댈 수 없어 그러했을 것이다. 나의 ‘우리’는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사람들.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 죽은 자에게는 곡을 건네고, 산 자들과는 새벽 손님들에게 컵라면을 공수할 방법을 논의하는 사람들. 우리의 언어는 빈곤했고,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는 우리의 언어사전에 없었다. 평소에 말을 갈고닦지 못했으니, 그녀의 죽음 앞에 우리의 목구멍은 메말랐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짐승 같은 울음. 미안하다는 말. 죽은 자에게 건네는 감정은 허공에 흩어지고, 산 자들이 나눌 것이라고는 고작, 사과 몇 조각.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 기억에 기댔다.


  지금의 나는 다시 비척비척 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갈 곳이 없어 이리저리 걷는다. 걷다 보면 여기저기 즐거움이 널려있다. 바다에서 보말을 캐듯 나는 작은 즐거움들을 줍는다. 즐거움을 채우고, 또 채운다. 죄스러움은 옅어지고 즐거움만 남을 때까지. 문득문득 죄스러움은 다시 올라온다. 도리가 없다. 산 사람은 즐거움에 기댈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아싸를 위한 공놀이는 어디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