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작고하셨다...R.I.P 99번째 화분. 일에 매몰되서 또 화분을 등한시했다. 마음이 아프다. 다시는 화분 사지 말아야지. 있는 애들이나 잘 키워야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원래 화분은 죽여가면서 키우는거야"
엄마는 심심한 위로를 전했다. 내 관리도 신경쓰기 바쁜데, 화분까지 키우려는 나의 욕심은 어쩐담. 그래도 자연은, 식물은 포기 못하겠어...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식물을 그렇게 잘 키우지?
오래 전, 유럽을 여행하며 에어비앤비에서 묵어보면서 홈가드닝의 욕망이 시작됐다. '집에 식물이 있으면 훨씬 더 멋진 홈스튜디오가 탄생하겠군.' 집을 식물원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무작정 화원을 찾았다. 아주 근사한 화원을 찾아내서 20만원을 플렉스를 했다.
결국 그 돈은 공중 분해 됐다. 7년이 지난 지금 남은 게 하나 없으니. 과한 집착이 화근이었다. 사랑이 아닌 집착으로 돌봤으니 결국 굿바이. 죽어가는 화분들은 꽤 아팠을텐데, 나도 마음이 아팠다. 하나씩 죽어나가니 슬펐다. 한동안 화분은 쳐다도 안봤다.
황량한 집이 또 마음에 안들었다. 생기로운 초록빛 식물이 당겼다. 일도 바빠죽겠는데 틈을 타서 화원을 향해 안죽는 식물만 골라서 가져왔다. 그렇게 죽이고, 사고, 죽이고, 사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터득한 노하우는 딱 하나였다. 적당한 관심. 이 적당한 관심은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일만 죽어라하면 관계에 빨간 불이 들어오듯이, 그런 애정이 필요해보였다. (맡은 바 책임을 다하시라고요...)
일은 열성적으로 하지만, 화분은 자꾸 죽이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00개 정도 화분을 죽여보니 큰 깨달음이 생겼다. 식물도 예민하고 까칠해서 주변 환경에 쉽게 반응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야한다고. 사람이나 다름없게 생각하니, 화분들이 1개월, 6개월을 지나 1년을 넘어 쑥쑥 크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 있는 공간에 90% 이상의 화분이 모여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믿는가? 화분도 그런 것 같다.
내 시야에 두고, 가끔 물만 주는데도 잘 크고있다. 겨우 3천원, 5천원씩 주고 온 애들이 2년째 성장중이다.
기특하다. 알아서 커준 것 같다. 나의 지대한 관심이 필요없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적당한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 화분들이 생명을 이어간다.
물을 못줘서 축 쳐진 애도 물론 있다. 어떻게든 살려야지 라는 생각은 이제 없다. 살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내비추고, 일에 다시 열중한다. 아이디어가 생각이 안나고, 뇌가 정체된 느낌일 때, 저 화분들을 바라본다. 화분멍의 시작, 결과는 늘 산뜻하다.
산책도 나갈 수 없이 바쁠 땐, 집에서 화분 멍으로 때운다. 꽤 효율적이다. 몸이 고단하고 지칠 땐, 화분이고 뭐고 안보이는 건 맞다. 근데, 새로운 영감과 산뜻한 느낌을 원할 때는 화분은 꼭 필요한 존재다.
시원한 자연 그대로의 민트티. 키우려는 목적이 아닌, 촬영 소품으로 샀던 민트 화분에서 수확했다. 벌써 반년도 더 됐는데, 겨울도 견디고 용케 살아준다. (감격ㅠㅠ..) 역시 일할 때, 한모금씩 마시고 뿌듯한 감정을 느껴본다.
분명 어떤 화분은 또 죽을거다. 하지만 다시 화분을 또 들일거다. 워커홀릭의 일터는 쉼터이기도 하니까, 욕망의 홈가드닝은 계속될거다. 워커홀릭일수록 자연을 밀착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