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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잠 Feb 23. 2020

일상200223

강제 휴식

 갑자기 심각해진 대구의 상황에 어쩔 수 없이 가게를 닫기로 했다.


 31번 환자의 등장 이후로 국내 코로나19의 양상이 급변하게 되었다. 대략 5일 정도 나타나지 않아 곧 잡힐 것만 같았던 확진자의 수도 갑작스레 등장한 31번 환자의 존재로 인해 급증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천지'라는 (사이비) 종교를 가지고 있는 그 환자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보건소 측에서 검사를 요청하는 자신의 의견을 묵살했다며 말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발표한 이야기는 환자의 말과는 정반대였다. 앞서 언론을 통해 언급했듯 세 차례에 걸쳐 환자에게 코로나 검사를 받기를 제안했지만 모두 무시했다는 것. 그리고 열과 오한을 겪으면서도 간단한 약에 의존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지금 내가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그 31번 환자의 몰상식하고 비양심적인 말과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나와 같은 마음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에 굳이 내가 한 번 더 언급하는 건 괜히 나의 스트레스나 울화만 더욱 치솟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바로 강제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나와 나의 아내의 상황에 대해서.


 사실 지난주 목요일까지만 해도 '그래도 책방은 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과 판단이 내 머릿속의 주를 이루었다. 31번 환자의 등장과 그 이후 같은 (사이비) 종교의 환자 교인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매장은 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료나 음식을 다루지 않으며 나름 간헐적으로 사람들의 손이 많이 닿는 부분을 소독제로 소독하는 예방 및 대비책을 스스로 마련하고 있기에 우리 매장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순한 대책은 현재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다음 날인 금요일에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의 숫자에 '아, 이건 간단히 소독제로 슥슥 닦는 정도로만 해서는 안 되겠다.'라는 결정을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인 21일 퇴근 후, 아내와 긴급한 회의를 가지고 마침내 우린 주말 동안 가게를 닫자는 데에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 가지게 된 지금의 갑작스러운 강제 주말 휴식이다. 토요일인 어제, 잠시 가게에 들러 미처 남겨놓지 못한 '긴급 주말 임시 휴업' 안내문을 매장 1층 입구와 3층 입구에 부착시켜놓았다. 잠시 들린 매장 주변은 정말 주말 낮 시간이 맞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한산했고, 조용했다. 주변의 대부분의 식당이나 카페들도 각자만의 안내문을 붙이며 긴급 임시 휴업에 돌입했음을 손님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서둘러 안내문을 부착하고 나온 우리는 주말 동안 버틸 간단한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보통 그 시간대에 장을 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의 카트에는 5개가 함께 포장된 라면을 여러 세트 담아놓으며 혹시 모를 일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어 보였다. 극단적인 어떠한 상황이 올 것 같지는 않겠다는 생각에 우린 시리얼과 과일, 그리고 국거리용 고기 및 기타 식료품을 담고 얼른 계산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쭈욱 집이었다. 가끔 마을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아내와 그리고 시로와 쿠로와 함께 집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당장 우리 동네를 조금만 지나면 바로 청도이기 때문에 함부로 바깥을 막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그저 날이 좋던 여름과 가을에 주로 지나던 익숙한 산책로만을 걷고 온몸에 맑은 공기와 태양을 쬘 뿐 가까운 카페나 식당은 찾아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늘어난 테이프 같은 시간의 여유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주말을 맞이 하기 전, 갑작스레 얻게 될 이 공백의 시간에 대해 다양한 '생산적' 활동을 떠올리며 가득 채워야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웬일인지 어딘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시간이다. 마치 무언가를 잊은 듯하기도, 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하며, 심지어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이 싱숭생숭한 기분이 다른 그 무엇에도 집중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작업하던 글을 이어 쓰려고 해도 이전에 작업한 구상이 쉽게 머릿속에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간단한 소회만을 담거나 생각과 느낌만 풀어내는 에세이 형태의 글만 그럭저럭 이어나갈 뿐 주로 작업하는 짧은 이야기 형태의 글들을 쉬이 이어나갈 수 없다. 왜 그럴까? 붕 떠 있는 마음이 써오던 글의 가닥에 가닿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그것은 물밀듯이 쏟아지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한 뉴스나 확진자의 수, 그리고 나타나기 시작한 사망자의 수가 내 마음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예상하고 있다.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갑작스레 얻게 된 시간에 만끽하며 게으름을 표출하고 싶은 나의 숨어있는 자아가 이렇게 만드는 것일 수도.


 집 앞 산을 넘어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과연 이 사태가 언제쯤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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