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치열한 삶 속에서
2018년 6월 19일
지난 479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여행의 끝을 가늠하지 못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에게는 1년만 여행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말하고 떠났지만 사실 내 마음은 1년이 아니라 여행의 끝이 다시 돌아오질 않길 바랬다. 어느 여행 관련 기업의 문구 "일상을 여행으로"라는 말처럼, 내 일상 속에 항상 여행이 존재하길 바랬고, 여행의 끝이 다가오질 않기만을 바랬다.
낯선 공간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낯선 음식을 먹는 것, 한국이었으면 아는 척도 하지 않았을 낯선 사람들과 먹는 행복한 식사와 음주 등을 할 수 없어졌다. 여행은 분명히 끝나고야 말았다.
귀국 전에 생각했던 다짐들. 한국에 가면, 떡볶이를 먹어야지. 평양냉면을 먹을 거고, 엄마가 해준 곰탕을 먹을 거야. 와 같은 다짐들 보다는 한국에서 다시 살아갈 걱정에 휩싸였다. 생계를 위해서 재취업을 해야 하며, 서울에서 살 집을 구해야 하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걱정해야 하게 되는 삶, 다시 치열한 삶이 있는 곳으로 가야만 한다는 것.
이제는 여행할 만큼 했다.라고 생각이 들어 귀국을 결심했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 끝난 뒤의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여행이 끝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많은 곳에서,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나의 세상이 어느새 끝나 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다시 직장생활을 할 생각을 하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여행 중에 만났던 친구들을 한국에서 만나는 일도 처음엔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여행 중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들이 같았으면 좋겠지만 같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 약속을 피할 방법이 없을까 몇 번 고민했다.
이 모든 걱정은...
여행을 하며 배웠던 것 중에 하나가 내가 하는 걱정의 99%는 쓸데없는 것이었는데 이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차차 적응을 하면서 우습게도 내가 해왔던 모든 걱정들은 서서히 풀려 나갔고, 재 취업하는 것도, 서울에 집을 구하는 것도,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서서히 풀려 나갔다. 여행 전의 나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보다는 걱정이 늘 앞섰고, 여행 후에도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어도 여행이 나의 많은 것을 바꿔줄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이 부분도 바뀌어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사실은 어디에 여행을 가도 그들만의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누구한테는 특별했던 추억이지만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내일 아침에 무얼 먹을지 걱정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낯선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여행보다 특별했던 이번 여행, 이 여행이 가져다준 인연이란 선물, 그리고 인생에서 여행이란 의미를 조금 더 가까이해주었던 많은 사연들이 현실로 돌아온 나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덕에 친구 한 명 없이 올라온 서울에서도 외롭지 않을 만큼의 친구들이 생겼고, 아주 다양한 모습의 삶들 속에서 함부로 단정 짓는 행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아, 이제는 여행의 의미를 조금 더 알겠다. 여행은 특별한 것이 아닌 단지 과정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새로운 회사에서 새로운 분야의 업계로 모험을 떠나고 있다. 이번 여행처럼 이 모험의 끝이 어디일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고, 그 끝에는 또다른 도움이 되는 인연들과 경험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계속 여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아직도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을 하며 다음 여행에는..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그만큼 아쉬운 것들이 많았으리라, 이제는 그 다음 여행에는.. 라며 했던 말을 현실로 옮길때가 왔다. 여행이 많은것을 바꿔주진 않았지만 시작점이 될수는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