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쓰지 못하는 당신에게_적당히 멈추는 기술
"이게 다는 아닌데, 뭘 더 써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수강생들은 자신의 글을 내보이며 늘 불안해한다. "일단 여기까지만 썼어요. 뭔가 더 쓰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스스로 미완이라 느끼지만 현재로선 여기가 끝이어서 당장 뭘 더 쓸 수는 없다. 마음에 쏙 들지 않는 글을 누군가에게 보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적지 않은 용기를 낸 것만으로도 멋지고 기특하다. 하지만 쓰는 사람의 마음은 편치 않다. '덜 썼다', '양이 부족하다'는 말속에는 내 글이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 들어 있다. "이게 진짜 내가 쓰고 싶었던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제대로 쓴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마음, 나라고 없었을까. 매일 기사를 쓰고 마감해야 했던 시절, '이걸 이대로 세상에 내보내도 되는 건가'하는 불안함이 늘 자리했다. 마감시간은 이미 지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지막 마침표가 찍혀 글은 완결됐다. 자식 같은 글을 떠나보내고 자랑스러우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흔치 않다.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게 명확히 드러났는지, 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지 않았는지, 취재 대상의 어투를 온전히 담아냈는지 출고된 지 몇 시간 지난 기사를 다시 읽고, 나 홀로 제목을 바꾸고, 문단 순서를 뒤집고, 그제야 생각난 단어를 넣어 본다. 이미 지나간 글, 읽을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읽었을 그 글을.
이는 글쓰기라는 행위가 남기는 감정의 특성이다. 쓸 때마다 '최선'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그 최선을 놓친 건 아닌지 스스로 의심한다. 그 의심은 끝이 없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불안이 일어난다. 글의 구조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분량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마음 한쪽이 계속 불편하다. 내 마음이 아직 동의하지 않은 상태다. 이렇듯 온전치 않은 글이라니.
수강생 중엔 글을 빨리 써서 제출하고, 수업 시간에 글을 발표하는 일도 곧잘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 고쳐서 메일로 다시 보내는 이도 있다. "선생님, 발표하고 나니 마음이 불편해서 다시 써봤어요." 신중하게 완벽을 기하지만 그는 매번 글을 내보내는 순간마다 마음이 초조해진다고 했다. 이게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일까, 혹시 더 나은 이야기가 빠진 건 아닐까. 사라지지 않는 의심의 그림자.
어떤 이들은 의심이 스멀스멀 밀려올 때 글을 다시 열고 처음부터 고친다. 또 어떤 이들은 아예 제출을 포기하고 다음 수업으로 넘긴다. 나 역시 수년째 글을 쓰고 있지만 열 번, 스무 번을 고쳐 쓴 끝에 결국 처음 쓴 문장으로 돌아간 적도 많다. 고치면 고칠수록,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은 어느 순간 글자의 미로에 빠지게 만든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다 문장을 쓸데없이 복잡하게 하고, 유려하게 만들고자 갖은 애를 쓰다가 거대한 포장에 질려버리기도 한다. 무언가 더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글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의심을 끝없이 부추긴다.
난 그래서 퇴고가 '고치는 기술'이라기보다는, '멈추는 감각'에 더 가깝다고 본다. 더 써서가 아니라 멈추는 결정을 내리는 것. 이제 그만! 그 자리에 멈춰보기. 하지만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글의 완성을 '완벽함'으로 등치해서다. 모든 걸 다 써야 완성이고, 더 이상 고칠 게 없어야 끝이라고 생각하면 글은 끝날 수 없다. 어쩌면 완성이라는 말은 신기루일지 모른다. 솔기 없는 옷처럼 매끈한 듯 보여도, 내일 보면 또 다르게 느껴지고, 몇 달 뒤엔 도저히 그대로 둘 수 없는 문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저 매번 불안 속에서 글을 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글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게 다가 아닐 것 같다"는 미진함은 꼬리처럼 들러붙는다. 그건 잘못된 감정이 아니라, 계속 쓰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글은 대부분 '이만하면 됐어'라고 끝내기를 결단하는 일로 마무리된다. '여기까지면 나쁘지 않아.'라고 스스로 말해줄 수 있을 때 품고 있던 글을 떠나보낼 수 있다. 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결국 계속 쓰는 사람이다. 글쓰기의 진정한 완성은 완벽함이 아니라, 적당한 때에 멈출 수 있는 용기에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썼고, 그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다면, 그것은 하나의 도착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문장 위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건, 글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번 불완전함 속에서도 계속 써나가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이게 다는 아닐지 모르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그리고 내일 다시 한 발짝 더 가면 된다. 애써 쓴 글, 당신은 놓아줄 준비가 됐는가?